[스포츠서울 | 파리=정다워 기자] 올림픽과 내셔널리즘은 필수 불가결하다.

올림픽은 각 나라 이름을 걸고 싸우는 대회다. 존재 자체로 내셔널리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중요하게 여기는 프랑스조차 국기를 들고 자국 선수를 신나게 응원하는 무대가 바로 올림픽이다. 국가 없이 출전이 불가능하다. 이번 대회에 난민선수단(ROT)이 존재했지만, 각 국가 소속으로 뛸 수는 없었다. 올림픽에서는 개인의 이름보다 오히려 국가명이 더 중요해 보이기도 한다.

나라 이름과 국기를 달고 나가는 올림픽에서 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선수의 ‘사과’였다. 경기에서 패하거나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가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온 국민의 이목이 쏠리는 올림픽에서 선수가 느끼는 부담과 책임감이 어느 정도로 큰지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2024 파리 올림픽을 현장에서 취재하며 수많은 메달리스트를 만났다. 정확히 25명이다. 금메달을 딴 선수도 있지만 은메달, 혹은 동메달을 획득한 선수도 많다. 더러는 아예 입상하지 못했다.

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선수 중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거나 눈물을 흘린 선수는 본 기억이 없다. 개인의 아쉬움이나 부모, 스승을 떠올리다 눈물 흘린 선수는 있지만, 국가, 국민을 향해 사과한 선수는 보지 못했다. 은메달·동메달리스트는 나름대로 각자의 올림픽을 즐겼을 뿐이다.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가 “재미있었다”며 웃는 얼굴도 어렵지 않게 목격했다.

기성세대에게는 낯선, 새로운 문화 중심에는 ‘21세기’ 소년·소녀들이 있다. 이번 대회에는 21세기에 출생한 선수들이 대거 수면 위로 올라와 맹활약했다. 사격 반효진(2007년생), 탁구 신유빈. 태권도 박태준(이상 2004년생), 양궁 임시현, 역도 박혜정, 근대5종 성승민(이상 2003년생), 배드민턴 안세영(2002년생), 수영 김우민(2001년생) 등이 이번 대회를 통해 스타로 도약했다.

이들이 하나 같이 언급한 요소가 바로 “즐기는 것”이다. 어렵고 힘든, 고된 도전 속에서도 즐기는 자세로 올림픽에 임한 게 메달로 이어졌다는 나름의 분석이다. 국가라는 무거운 짐은 한켠에 내려놓고, 개인의 성취에 집중하면서 나라의 명예를 높였다는 뜻이다. 올림픽 가치에 딱 부합하는 얘기를 21세기 소년·소녀들은 아무렇지 않게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사회 분위기 자체가 그렇다. 이제 더 이상 태극기 앞에 ‘충성’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마냥 나쁘게 볼 수 없다. 선진국처럼 개인의 자유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흐름으로 갈 수밖에 없다. 스포츠도 사회의 일부다.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과거와 같을 수 없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애국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관중석에서 흔들리는 태극기는 여전히 선수를 힘나게 하는 원동력이자 경기를 더 즐기게 하는 원료가 된다.

이러한 달라진 공기 속에 한국은 역대 최고인 금메달 13개를 획득했다. 메달 개수도 32개로 1988 서울올림픽(33개) 이후 최다이다. 과거처럼 태극기에 얽매이지 않아 내셔널리즘이 희미해진 선수들이 이룬 성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대회에서 메달을 땄거나, 의미 있는 성적을 낸 21세기 소년·소녀들은 4년 후 LA올림픽에서도 만날 가능성이 크다. 아직 20대 초반이기 때문에 오히려 다음 대회에서 더 나은 기량을 선보일 수 있다. 파리에서 얻은 의미 있는 성과다. we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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