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K-뮤지컬을 이끄는 김문정 음악감독이 또 다른 무대에서 후배 양성에 나섰다. 그의 역량을 뽐내기 위한 가르침이 아니다. 대한민국 뮤지컬의 미래를 함께 설계해 나갈 인재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올해로 뮤지컬 음악 지휘봉을 잡은 지 24년. 그가 완성한 작품만 50여 편에 달한다. 여기까지 걸어오는 동안 수많은 배우와 스태프를 만나 함께 꿈을 이루고 있다.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전 김 감독이 진행한 오디션만 수천 번이다. 이중 여럿은 대극장 무대에 올라 스타 반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수천 명은 여전히 무대를 갈망하고 있다.

가장 젊음을 만끽해야 할 나이에 어쩌면 배고픈 길을 걷고 있는 지망생들이다. 김 감독은 꿈을 이루기 위해 전진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김 감독은 “한 작품의 오디션 공고가 뜨면 300~1000장의 원서가 도착한다. 이유가 있겠지만, 다수가 서류에서 떨어진다. 현장 오디션을 보더라도 40~50초 만에 좌절을 맛본다”라며 한숨 쉬었다.

이어 “‘팬텀싱어’ 등을 보면 비전공자 중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열망을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한다”라며 “직업 특성상 새로운 캐릭터를 찾는 것이 내가 하는 일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뮤지컬의 ‘대모’로서 무언가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고민 끝에 그와 뜻이 같은 뮤지컬업계 종사자들과 손잡고 뮤지컬 양성소 ‘시즌엠아카데미’를 오픈했다.

시즌엠아카데미는 사계절 뮤지컬에서 지속력 있는 삶을 의미한다. 시작은 뮤지컬 배우 육성이다. 향후 음악감독, 연출가, 개사자 등 업계의 모든 종사자를 배출하는 공간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배우뿐만 아니라 스태프 양성까지 영역을 뻗친 이유가 무엇일까. 김 감독은 무대 완성을 위해 다양한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무대 뒤를 책임지는 이들의 길이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김 감독이 데뷔한 2001년 뮤지컬은 흥행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당시 부르주아의 취미로 여겨졌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예술 분야였기 때문이다. 점점 이곳을 떠나는 동료들이 늘었다. 더 이상 이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영화계에 영화공작소가 있듯 뮤지컬도 창작소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김 감독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던 시대에 난 행운아처럼 꿈꾼 음악감독이 돼 지금까지 좋은 작품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이젠 작품 수도 많아지고, 사업화를 통해 K-콘텐츠로 자리 잡았다”라며 “하드웨어를 포장할 수 있는 단단한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내가 받은 것을 나눠주고, 창작진들과 제대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했다. 이 안에서 작품 하나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설명했다.

뮤지컬은 혼자의 힘으로 완성할 수 없는 것. 이것이 김문정 감독의 철학이다.

김문정 감독은 “단단한 실력을 갖추려면 계속 교류해야 한다. 그 장을 여러 직업군에서 열어주고 싶다. 감사하게도 많은 것을 받았기 때문에 이젠 나누고 싶다”라고 했다.

좋은 취지로 시작한 일을 꼭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이를 외면할 순 없지만,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이들과의 동행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김 감독이다.

그는 “내가 뭐라고 계획을 모두 이뤄낼 순 없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진 하려고 한다. 내가 못 하면 후배들이 실천하고 이 길을 이어갈 사람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gioi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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