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드라마에 과몰입하던 시절만 해도 악역을 맡은 배우가 음식점에서 쫓겨났다거나 지나가는 행인에게 쓴소리를 들었다는 사연이 적지 않았다. 드라마의 인기 덕분에 생긴 에피소드지만, 달갑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악역을 맡으면 광고가 떨어진다는 설도 있었다.
최근엔 완전히 달라졌다. 매력 있는 악역이라면 선한 주인공 못지 않은 큰 관심을 받는다. 최근엔 넷플릭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고민시와 SBS ‘굿파트너’ 지승현이 대표적이다.
◇고민시, 스파게티에 얼굴을 파묻은 ‘국민 사패’
성아(고민시 분)는 토마토 스파게티가 담긴 접시 위에 머리를 박고 미동 없이 쓰러져 있었다. 뒤늦게 펜션에 돌아온 영하(김윤석 분)는 혹시 죽은 건가 싶어 흠칫 놀랐다. 그러자 성아는 고개를 돌리며 활짝 웃었다. 영하가 반가워서 하는 장난인데, 섬뜩하기 그지없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고민시 연기력에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유성아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그리곤 조금의 죄책감조차 없다. 사람 죽이는 걸 개구리를 향해 돌을 던지는 장난을 치는 것처럼 쉽게 저지른다.
성아가 왜 이런 사이코패스가 됐는지 서사가 불분명하지만, 고민시는 표정과 눈빛, 아우라, 분위기만으로 설득력을 만들었다. 움직일 때마다 도드라지는 뼈 마디나, 고민의 틈없이 저지르는 폭력 액션을 매우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대목으로 이야기의 몰입을 높였다.
◇지승현, 울화통 터지게 만든 ‘국민 불륜남’
MBC ‘연인’에서 길채(안은진 분)를 버린 무관 구원무로 시청자들의 마음에 화를 지폈던 지승현이 ‘굿파트너’에선 ‘국민 불륜남’ 김지상으로 또다시 화를 돋웠다. 아내 차은경(장나라 분)의 비서 최사라(한재이 분)와 바람을 피웠음에도 “차은경은 엄마로서 자격이 없다”며 당당하다.
차은경이 자신의 물건을 훔쳐 본 것으로 더 화를 내고, 차은경과 정우진(김준한 분)이 사귀는 사이라고 가짜뉴스도 퍼뜨렸다. 아내는 안중에도 없고 딸만 소중히 여기는 모습이다. 심지어 내연녀 최사라도 지극히 이기적으로 대한다.
이미 연기력이 정평이 난 지승현은 김지상의 안하무인적인 면을 담백하면서 깊이 있게 표현했다. 감정을 최대한 아껴가면서도, 결정적인 순간 자신만을 위한 선택을 하는 모습은 불쾌감을 준다. 김지상이 도무지 좋아할 수 없는 캐릭터임에도, 극의 갈등을 완벽히 이끌어 박수를 쳐줄 수 밖에 없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예전만 하더라도 배우와 캐릭터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요즘에 전확히 구분하고 있다”라며 “그러면서 극을 이끄는 인물에 집중하고 있다. 드라마는 갈등을 다룬다. 갈등은 대부분 악역이 이끄는 부분이다. 악역이 연기를 잘하면 시청자는 ‘나를 몰입시킨다’고 생각해 더 큰 관심을 보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intellybeast@sportssoe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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