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장강훈 기자] ‘민턴 퀸’ 안세영(22·삼성생명)은 여러모로 2024년 가장 뜨거운 스포츠스타다. 파리올림픽에서 28년 만에 여자단식 금메달리스트로 우뚝 섰고, 세계배드민턴연맹(BWF)이 선정한 ‘올해의 여자선수’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여자선수’ 등 2관왕을 차지하는 등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좌절도 맛봤다. 올림픽 출전여부가 불투명했을 만큼 심각한 무릎 부상에 시달렸고, 생애 최고의 날에 한 폭탄 발언으로 배드민턴계는 물론 한국 스포츠계를 발칵 뒤집어 놓아 ‘이슈 메이커’로 부상했다.
파리올림픽 금메달 획득 직후인 8월5일 포르트드라샤펠 경기장에서 한 기자회견 때 “부상은 생각보다 심각했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대표팀한테 크게 실망했다. 대표팀과는 계속 가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협회를 직격한 발언이기도 했는데, 스포츠계에 만연한 각종 부조리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선수 관리뿐만 아니라 체계적이지 않은 시스템, 협회 의사 결정방식 등이 도마 위에 올랐고,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회까지 나서 강도 높게 조사하는 등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안세영이 쏘아올린 한마디는 대한축구협회와 대한체육회 등 국내 대표 스포츠단체장들의 거취 문제로 확산했다.
당시 안세영의 발언을 들은 야구 원로인 김성근 감독은 “권력 눈치만 살피며 제 밥그릇 챙기기에 바쁜 어른들보다 어린 아이가 훨씬 낫다. 속이 다 시원했다”고 총평했다.
안세영의 폭탄발언을 계기로 ‘대한체육회나 경기 단체가 선수를 위해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라는 근본적 화두는 체육계에 대한 개혁 요구로 이어졌다. 국회를 비롯한 외부에선 체육계가 부당한 관행, 조직 사유화 등으로 시대에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터져 나왔다.
문체부는 비(非) 국가대표의 국제대회 출전 제한 규정 폐지, 경기력과 직결되는 용품에 대한 선수 결정권 존중 등의 시정명령 조처를 내렸고, 국가대표 선수의 복종을 규정한 협회 규정도 폐지를 권고했다. 단·복식 특성에 맞는 훈련을 위해 대표팀 코치진도 늘리기로 했다. 선수 부상 진단·치료 선택권 존중, 새벽·산악 훈련 자율성 존중, 개인 트레이너 제도 정비 등은 다른 종목에도 적용될 전망이다.
안세영은 17일(한국시간) BWF가 공개한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당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상황이었는데, 내가 문제점을 말하게 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부족한 것들을 개선하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말했다. (결승에서) 이기든 지든 했을 것”이라며 “후회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에서 열린 HSBC BWF 월드 투어 파이널스 2024에서 동메달을 따내는 것으로 올시즌을 마무리했는데 “(배드민턴을) 즐기고 싶다. 재미있게 매 경기 좋게 플레이하면서 즐기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다. 배드민턴 레전드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발언 이후 비난 여론도 많았지만, 국내 스포츠계를 정화하는 데 도움이 된 만큼 툭툭 털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겠다는 다짐인 셈이다.
안세영의 용기있는 발언은 국가 기간뉴스 통신사 연합뉴스가 전국 언론사 스포츠 담당부서를 대상으로 한 ‘올해 국내 스포츠 10대뉴스’ 설문조사에서 1위로 뽑혔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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