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미키 반스(로버트 패틴슨 분)는 죽는 게 일이다. 새 행성 니플하임으로 가는 우주선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생체 실험의 대상자다. 죽을 때 드는 느낌, 피부가 벗겨지거나, 실명하는 순간도 묘사했다. 익스펜더블(expendable)에 지원했다가 이런 상황을 맞이했다. 죽어도 상관없다. 이미 기억까지 저장된 신체정보 덕에 다음 익스펜더블을 복제하기 때문이다. 늘 죽지만 영원히 죽지 않는 시스템이다.
미키는 열 일곱 번이나 죽으며 기술 발전에 큰 도움이 됐다. 덕분에 새 행성 니플하임에 무사히 도착했고, 행성에서 살 수 있는 백신도 확보했다. 하지만 모두 미키를 무시한다. 유일하게 미키를 챙긴 건 여자친구 나샤(나오미 애키 분) 뿐이다. 나샤의 사랑이 있었다고 해도, 미키의 반복되는 죽음을 막을 순 없다. 미확인 생명체 크리퍼가 발견된 뒤론 12시간 넘는 강도 높은 근무에 시달리고 있다.
새 행성을 조사하던 중 위기를 맞았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미확인 생명체 크리퍼 떼에 둘러싸인 것. 죽을 줄만 알았는데, 크리퍼는 미키를 살려줬다. ‘이게 뭔 일인가?’싶어 놀란 미키 17은 터덜터덜 우주선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미 죽은 줄 알았던 인간들은 미키 18을 복제했다. 소동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의 줄거리다. 봉준호 감독의 시대를 읽는 통찰이 예측불허 블랙코미디 안에 담겼다. 죽어도 계속 살아남는 사람을 대하는 우주선 내 인간들의 태도에 집중했다. 천박하게 인간을 대하는 집단과 작은 존재라도 존중하는 집단을 비교하며 인류애를 말한다.
특히 행성 개척자 마셜(마크 러팔로 분)의 대사로 현실을 비꼬았다. 부와 권력을 지닌 마셜은 인간에 대한 존중이 거세됐다. 여자들을 아이를 낳는 존재로만 여긴다. 미키와 함께 조사를 나간 여인이 죽어서 돌아오자 마셜은 “그녀 대신 죽지 않아 아이를 낳을 기회를 놓치게 했다”며 분노했다. 이 대목에서 그의 비인격적 성향을 알 수 있다. 인간을 하나의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는 태도는 꼭 마셜에게만 보이는 모습은 아니다.

이 외에도 “죽을 때 기분이 어때?”라고 서슴없이 물어보는 사람들, 어차피 죽어도 다시 산다는 이유로 미키에게 자기 대신 죽어달라는 티모(스티븐 연), 마셜의 아내로 인간의 죽음보다 자신의 카펫을 더 소중히 여기는 일파(토니 콜렛 분) 등 천박한 마인드로 살아가는 인간이 너무 많다.
영화는 미키 반스에서 미키 17과 미키 18을 거쳐 다시 미키 반스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렸다. 봉 감독에 따르면 17과 18은 성인이 되는 기점이란 의미에서 붙여졌다. 여러 굴레를 거쳐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지 깨달은 미키가 정신과 육체 모든 면에서 자아를 찾았다는 의미다.
전개가 빠르지는 않지만, 색다른 장면이 정말 많을 뿐 아니라 로버트 패틴슨을 비롯한 모든 배우의 열연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극단적 성향을 오고 가는 인물을 자연스럽게 표현한 로버트 패틴슨과 느끼하고 오글거리는 인물을 그린 마크 러팔로가 눈에 띈다.

봉준호 감독은 여덟 번째 영화 ‘미키 17’로 또 하나의 화두를 던졌다. 혐오가 가득한 시대를 돌파할 가치로 인류애를 끌고 왔다. 누구라도 존중받는 사회, 타인을 인정할 줄 아는 집단이야말로 갈등과 분노를 해결한다는 듯 전했다. 굳게 닫힌 결말로 미뤄보면 봉 감독의 생각은 공고해 보인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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