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은 정치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특히 마크 러팔로가 연기한 정치인 마셜이 특히 그렇다. 전 세계 모든 독재자를 떠올리게 한다. 미국에서는 트럼프에 대한 일갈이 아니냐며 기뻐하고 있다. 이탈리아 기자는 무솔리니를 떠올렸다고 했다. 놀랍게도 영화가 촬영을 마쳤을 때는 2022년이다. 봉 감독 역시 예언가 아니냐는 농을 많이 듣는다고 했다.
독재자를 상당히 우습게 묘사했다. 연설 도중 하는 쉬운 문법조차 틀리는 인물이다. 인간을 도구로만 인식하는 천박함도 담았다. 특히 마셜이 여자를 두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존재로만 여기는 대목은 상당히 불쾌하다. 어마어마한 죄를 파렴치하게 짓는 중에 찬송가를 부르며 우아하다는 표정을 짓는 대목은 역겹다. 미키 17은 이 대목에서 토를 쏟아낸다. 마치 위정자들이 온갖 더러운 일을 일 삼고 종교 뒤에 숨는 모습을 일갈하는 이미지다.

지난해 12.3 계엄 이후 두려움과 혼란으로 가득한 국내 정치와 ‘미키 17’의 풍경은 매우 흡사하다. 뒤에서 아내에게 조종당하는 정치인이나 사람 죽이는 것을 태연하게 여기는 권력자, 영원한 독재를 누리고자 했던 천박한 발상이 매우 닮아있다.
봉준호 감독은 “특정 정치인을 소재로 하지 않았다. 2022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그렇게 말하고 다니니, 한 영국 기자는 뒷방에 수정구슬이 있냐고 하더라. ‘뭔 소리인가’ 했더니, 마녀나 주술사, 예언자가 수정구슬을 사용하지 않냐”면서 수정구슬을 만지는 포즈를 취해 웃음을 전했다.

마셜이 가진 인간을 천박하게 보는 시선은 꼭 정치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미 사회에서는 미키 17처럼 죽음과 맞닿아있는 업무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또렷이 노출되지 않았을 뿐 여전히 도처에는 위험에 근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인간 프린팅이라는 게 SF적인 것 같지만 미키 같은 사건이 몇 년전에 유난히 짧은 텀으로 이뤄지지 않았나 싶어요. 화력 발전소에서 돌아가시고, 최근에도 제빵 기계에 돌아가시기도 했다. 막고 싶지만 너무 슬프게도 계속 생겨나요. 그 자리에 다른 분이 또 일하고 있을 거예요. 영화에선 미키가 그 일을 도맡죠. 현실적이고 잔혹한 콘셉트인 거죠. 현실의 시스템이기도 하고요. 청년 세대가 겪고 있는 힘든 고충이나 느낌을 미키라는 얼빵한 코미디 캐릭터에 담은 거죠. 조금 더 깊게 보면, 그가 처한 가혹한 상황은 분명 현실과 맞닿아있어요.”
앞서 봉준호 감독은 12.3 계엄에 대해 소신있는 발언을 이어왔다. 인터뷰 현장에서도 계엄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과연 그라면 이 사안을 두고 어떤 영화를 만들까 궁금하다는 질문이었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시간적 거리가 있어야 해요. 지금은 한복판이라 쉽지 않아요. 국민들이 큰 상처를 받았잖아요. 집단 트라우마죠. 치유가 필요하고, 실제 계엄 이후 불면증 걸린 분들도 많다고 들었어요. 빨리 회복되길 바랍니다. 영화속에 불과 작년인데 ‘서울의 봄’이란 영화에서 계엄과 쿠데타를 다룬 영화가 나왔잖아요. 43년 갭을 두고 만든 영화인데도 심박수 챌인지, 분하고 원통하고독재자 모습이 치가 떨리잖아요. 12.3 계엄은 너무 황당한 트라우마라 치유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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