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자, 할머니!”…산불 속 어르신 7명 업고 달린 인니 청년, ‘영덕의 영웅’ 되다

[스포츠서울 | 배우근 기자] 산비탈 마을에 밤사이 불이 번지고 있었지만, 정작 주민들은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전기와 통신은 끊겼고, 방송도 무용지물이었다.
그 순간 어둠을 뚫고 한 외국인 청년이 마을을 누비며 소리를 질렀다.
경북 영덕군 축산면 경정3리에 ‘기적’이 일어난 건 지난 3월 25일 밤이었다.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강풍을 타고 해안마을까지 덮치자, 대부분이 고령자인 마을 주민들은 잠든 사이 위기를 맞았다.
마을 방송도 전기가 끊겨 울리지 않았다. 이장 김필경 씨는 “방송이 안 나와서 안 되겠다 싶어 한 집, 한 집 두드리며 깨웠다”고 회상했다.
그때, 인도네시아 국적의 선원 수기안토(41) 씨가 나타났다. 그는 어촌계장 유명신 씨와 함께 “할머니, 빨리 나가요. 불이 났어요!”라고 외치며 마을을 달렸다.
불길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고, 수기안토는 지체 없이 7명의 어르신을 직접 등에 업고 방파제까지 300m를 뛰었다.
“할머니가 나이가 많아서 빨리 못 가요. 그래서 내가 빨리 업고 내려갔어요.”
비탈길 언덕을 오르고 또 오른 끝에, 수기안토는 어르신들을 안전지대로 대피시켰다. 그가 구조한 90대 주민은 “TV를 보다가 잠들었는데 수기안토가 와서 업어줬다. 아니었으면 정말 방에서 불타 죽었을지도 모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마을 주민 60여 명은 어선이나 방파제로 대피해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 이들은 입을 모아 “그 친구가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훌륭한 청년이다. 함께 계속 살고 싶다”고 말했다.
8년 전 취업 비자로 한국에 들어온 수기안토는 “여기 사람들은 가족 같다”고 애정어린 속내를 밝혔다.
그의 고국 인도네시아에는 아내와 다섯 살 아들이 있다. 그는 “고향에서 아내가 ‘정말 자랑스럽다’고 전화 줬어요. 사람들 다 무사해서 다행이다”라고 방싯했다.
수기안토의 사연이 알려지자, 법무부는 그에게 ‘장기거주(F-2) 자격’ 부여를 검토 중이라고 1일 밝혔다. 이는 대한민국에 특별한 기여를 했다고 인정되는 외국인에게 법무부 장관이 부여할 수 있는 체류 자격이다. 또한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직접 나서 비자 연장 등 지원을 약속했다.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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