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부산=장강훈 기자] 깜짝 놀랐다. ‘신들린 샷’은 이럴 때를 두고 한 말인가 싶다. 쇠구슬이 자석에 빨려들어가듯 퍼트만 하면 홀에 쏙 들어간다. “운이 많이 따랐다”고 했지만, 새어나오는 웃음은 참지 못했다. ‘슈퍼루키’로 떠오를 준비를 마친 김민솔(19·두산건설)이 몰아치기의 진수를 뽐냈다.
김민솔은 3일 부산 동래베네스트골프클럽(파72·6579야드)에서 막을 올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두산건설 위브 챔피언십 첫날 버디 9개와 보기 1개를 바꿔 8언더파 64타를 적었다.

선수도, 갤러리도, 대회 관계자도 모두 놀랄만한 성적. 동래베네스트GC에서 치른 KLPGA투어 코스레코드는 1오버파 73타. 1983년 김선화가 부산오픈 1라운드에섯 작성한 기록이다. 부산에서 KLPGA투어 개막전이 열린건 2007년 KB국민은행 스타투어 1차대회 이후 18년 만이다. 당시에는 아시아드CC에서 열렸다.동래베네스트GC에서 KLPGA투어 대회가 열린건 42년 만이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흘러 열린 정규투어, 그것도 개막전에서 이른바 Z세대로 불리는 김민솔이 코스 레코드를 9타나 경신했다. 심지어 김민솔은 정규투어 시드가 없다. 메인 후원사인 두산건설이 초청선수로 무대를 내어줬는데, 보란듯이 신기록을 세웠다.
2위그룹과 5타 차로 넉넉한 단독선두로 1라운드를 마친 김민솔은 “경기 초반부터 버디를 많이 잡아 재미있게 플레이했다. 세컨드 샷이 제일 잘됐고, 운이 많이 따르는 퍼팅 덕분에 좋은 스코어를 기록했다”며 웃었다.

실제로 2번홀부터 8번홀까지 7연속 버디 행진으로 일찌감치 리더보드 최상단을 장식했다. 3번홀에서는 10m 남짓 버디 퍼트를 홀에 떨어뜨리는 등 운도 많이 따랐다. 7연속 버디행진은 생애 처음. 김민솔은 “의식을 안 할 수가 없더라. 당황하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돌아봤다. 기억을 끄집어내면 다섯 개가 자신의 최다 연속 버디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동래베네스트GC는 높낮이가 심한 편이다. 오래된 골프장이어서 그린도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그린스피드도 3.4 스팀프미터여서 속칭 ‘유리그린’으로 부를 만하게 세팅했다. 8언더파를 기록한 것 자체가 만화 같은 장면이라는 뜻이다.

김민솔은 “지난주에 군산CC에서 플레이했는데, 그린스피드 차이가 많이 났다. 넣는다는 생각보다 그린 경사를 생각하며 플레이했다. 처음에는 그린도 잘 안보이고, 경사도 어려워서 퍼트만 잘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성적보다 플레이 자체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설명했다.
사실 차세대 스타로 첫손에 꼽히는 선수다. 아마추어 때부터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좋은 성적을 거뒀다. ‘국가대표 에이스’라는 칭호를 받았고, 지난해 생일에 프로전향을 선언했다. 프로무대에서도 어렵지 않게 적응할 것이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그런데 KLPGA 드림투어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정규투어 시드전에서도 83위에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그는 “스스로 가진 궁금증이 쌓인 상태로 프로에 입문했다. 기술적인 부분은 물론 골프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에 빠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속칭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은 셈이다.
뉴질랜드에서 전지훈련하며 코치와 대화로 궁금증을 풀어낸 김민솔은 “앞으로도 궁금증은 계속 생기겠지만, 골프와 나에 대해 많이 알게됐다. 기술보다는 심리적인 부분이 많이 개선돼 답답한 부분을 상당수 해소한 것 같다”고 밝혔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참가한 정규투어에서 첫날 빼어난 성적을 거둬 “자신감도 80%가량 회복한 것 같다”고 자평할 만큼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냈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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