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또 터졌다. 연기 잘 하는 배우들 사이에서도 바지춤에 송곳이 튀어나온 듯 돋보였다. “박해수만 보인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현실에 발이 딱 달라붙은 듯하면서 전에 없는 악한 인물을 창조했다. 덜 떨어진 바보부터 사악한 사이코패스까지, 진폭이 큰 인물임에도 매 순간 자연스러웠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악연’ 속 박해수다.
대중의 극찬을 스스로도 인지한 듯 했다. 조심스럽고 신중했다. 박해수는 지난 9일 진행된 서울 종로구 JW 매리어트 동대문 스퀘어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너무 들뜨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캐릭터 변화나 감정의 진폭도 커서 제 연기를 좋아해주는 것 같다. 이런 인물 만나는 것 자체가 복이다”고 말했다.

박해수가 맡은 목격남은 세 가지 얼굴을 갖고 있다. 뺑소니를 저지르고 시체를 묻으려는 안경남(이광수 분)과 유정(공승연 분)을 발견했을 때의 어리바리한 모습, 본색을 드러냈을 때 사악하고 혐오스런 얼굴이다. 이야기 속에서 슬그머니 바뀌는 장면이 매우 자연스럽다. 후반부 심한 화상을 입은 얼굴은 강렬하다.
“두려움이 없진 않았어요. 귀도리개를 쓰고 나타났을 땐 안경남의 에너지를 받는 느낌이었고, 화상 입었을 땐 한 길로 쭉 갔죠. 혐오와 짜증이요. 목소리도 바꾸긴 했어요. 흐름이 맞지 않으면 붕붕 날아다닐 것 같았는데, 감독님께서 선을 잘 조율해주셨어요. 이야기가 쫙 흐르는 게 보였어요. 자연스러움은 감독님 덕인 것 같아요.”

목격남의 도덕성은 거세됐다. 돈을 벌기 위해 타인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것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마지막 순간에서조차 죄의식이 없다. 남탓만 할 뿐이다. 배우는 자신이 맡은 인물을 좋아하거나 이해해야 더 좋은 연기가 나온다고 한다. 목격남은 정상적인 사람이 이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이해를 하진 않았어요. 껍데기 같은 인물인 거죠. 집이 어딘지도 모르고, 남의 몸을 빌려 사는 악한 영혼이라 생각했죠 남의 양심으로 남 탓만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에요. 그냥 정당한 비즈니스라 여기고 살아가는 거죠. 목격남이 무슨 양심과 도덕이 있을까요. 양심이 없는 사람도 있잖아요. 이 인물을 더 알려고 하고, 깊게 생각했으면 아마 상투적인 연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악역도 적잖이 해봤다. 강한 인물도 많았다. 넷플릭스 ‘오징어게임’이나 ‘수리남’도 그렇고 영화 ‘사냥의 시간’ ‘야차’ ‘유령’ 모두 강하고 센 인물이었다. 비슷한 인물군에다가 외형의 변화도 많지 않은데, 늘 새롭다. 인물을 자기 안으로 받아들인 뒤 꺼내는 접근법은 자칫 질릴 수 있는데, 매번 훌륭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놀라운 일이다.

“어쩌면 제 단점이기도 할 것 같아요. 작가의 글이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제 표현이라고 하더라도 다르게 느껴질 것이란 믿음이 있어요. 저는 현장에서 주위 배우들이나 스태프에게 기대면서 구축하는 타입이에요. 답을 내리지 않고 임해요. 현장 스태프들이 정말 많이 돕는다는 걸 알고는 마음이 편해졌어요. 제가 적당히만 잘해도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는 믿음이 생긴 거죠. 오히려 집중력이 더 좋아졌어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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