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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배우근기자] 젊은 주연 배우들이 먼저 포토타임을 가진 뒤에 허준호가 무대에 올랐다.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은 채 카메라 플래시를 받았다.
14일 MBC 새 수목드라마 ‘이리와 안아줘’(이아람 극본, 최준배 연출)의 제작발표회.
허준호는 주인공 역을 맡은 장기용의 아버지로 출연한다. 그는 ‘이리와 안아줘’에 대해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운을 떼며 “젊은이들이 어떤 역경도 이겨내면서 승리해 나가는 예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멜로 드라마에 캐스팅이 잘 안되는데, 이번에 출연하게 됐다”라며 밝은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연출을 맡은 최준배 감독도 “역경을 헤쳐서 일상의 행복을 찾고자 하는 이야기”라고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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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웃음꽃이 만연한 허준호의 모습을 보며, 하마터면 깜박 속을 뻔 했다.
허준호가 누군가!국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상파 배우’ 아닌가. 그의 설명이 이어지며 곧 본색이 드러났다. 멜로는 젊은 배우들의 몫. 허준호는 희대의 사이코 역할이다. 이야기 구조는 다층적이다. 그의 아들은 대척점에 서 있는 경찰 엘리트. 그리고 아들의 연인은 허준호에게 살해당한 마지막 희생자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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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진짜 살인은 안 해 봤잖아요.”
다시 돌아온 미소. 그러나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마주한 그의 유머섞인 미소에 소름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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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 보증수표. 그러나 젊은 배우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가야 하는 역할이라 부담은 분명해 보인다.
“악역을 몇 번 하면서 살인마, 사이코패스 역은 언젠가는 해보고 싶다는 작은 희망이 있었다. 캐스팅 제안이 와 행복했다. 그런데 우발적 살인이 아닌 치밀하게 살인을 그리는 인물을 표현하려다 보니, 거짓말처럼 매일 악몽을 꾸고 있었다. 제일 심한 악몽은 양쪽 발목이 다 잘리는 꿈도 꿨다. 작품이 주는 무게감이 있고 맡은 배역을 잘해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런 욕심에서 오는 현상이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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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질문.
“경력이 많지 않은 후배들과 함께 촬영하며 특별히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나 부담은 없나요?”허준호는 약간은 달뜬 분위기의 제작발표회에서 군더더기 없이, 그러면서도 여유가 녹아나는 답변으로 취재진의 주목을 받았는데, 특히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베테랑 배우의 미덕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제게도 이 배우들과 같은 시절이 있었어요. 이때가 가장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을 때거든요. 여기 후배들이 있어서가 아니라, 잘될 것 같은 기운이 몰려와요. 현장에 있으면 느껴지거든요. ‘아, 저 친구는 잘될 거 같다’, ‘저 후배는 더 잘할 거 같다’하는 기운이요. 그런 기운이 넘쳐나는 현장이에요. 그래서 너무 행복합니다. 저만 잘하면 될 것 같아서, 최대한 작품 외에 다른 짓을 안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런 예쁜 작품 만나서 감사합니다.”신인급 배우들이 주연으로 나서며 우려할 만한 부분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허준호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함께 촬영중인 후배들의 에너지를 높이 평가했다. 더불어 자신을 낮췄다.
만약 그가 함께 자리한 젊은, 그러나 자존심 높은 배우들에게 조언을 늘어놓았다면 어땠을까. 귀담아 들을 쓴소리가 될 수도 있지만, 뒷전에서 꼰대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은 허준호의 답변에는 배려와 겸손이 현명하게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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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사진을 찍을 때도 베테랑의 미덕은 드러났다. 그는 가장 먼저 끝자리에 섰다. 그리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제스처를 통해 젊은 배우들이 돋보이는 자리에 설 수 있게 도왔다.
이날 오전 2018러시아월드컵 국가대표 명단발표 장소에도 갔는데, 그 행사의 마지막이 신태용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단체사진 촬영이었다. 무대에 올라간 신태용 감독은 최전선의 장수처럼 앞만 바라보고 섰다. 나머지 코칭스태프는 잠시 우왕좌왕했지만, 곧 감독을 중심으로 섰다.
물론 결전을 앞둔 대표팀과 드라마 제작발표회를 직접 비교하긴 힘들다. 또한 옆과 뒤를 돌아보지 않은 신 감독을 폄하하려는 의도 역시 없다. 다만 베테랑으로서 주변을 아우르는 여유의 차이는 있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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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아버지를 닮아서일까. 아들 역할의 장기용도 남녀를 가리지 않는 매너 손을 보였다.
단체사진을 찍을 때였다. 그는 김경남이 한켠에 물러나 있자, 그를 살며시 끌어당겼다. 그리고 어깨를 맞대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김경남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 후속으로 방송되는 ‘이리와 안아줘’는 16일 수요일 오후 10시 첫 방송된다.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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