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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배우근 기자] 유난히 시끌시끌한 야구팀이 있다. 아이들이 타순을 짜고 포지션을 정한다. 투수도 이닝별로 바뀐다. 그 과정에서 각자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감독은 한 발 떨어져 미소를 머금고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 장면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어리둥절하다.

이제, 타순이 짜여졌다. 1번부터 14번까지다. 9명이 아닌 14명의 타자가 차례대로 방망이를 잡는다. 가위바위보로 정한 타순이다. 이날 경기에 참여한 아이들이 빠짐없이 타석에 선다. 경기 전, 이 상황을 상대팀에 전하고 이해를 구하는 건 감독 역할이다.

대구 북구 유소년 야구팀에서 주말마다 벌어지는 일상이다. 일반적인 야구팀의 모습은 아니다. 시작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올해 초 야구팀 주장이 홍순천 감독에게 대표로 말했다(주장은 두 달마다 바뀐다). “이번 경기에서 우리가 타순을 짜면 안될까요?” 홍 감독은 주장의 발언이 신선하게 들렸다. 다른 아이들 의견도 확인했는데 같았다. 이때부터 북구 유소년팀은 아이들이 주도해서 오더를 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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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감독은 흐뭇했다. 자신의 지도철학이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는 공정과 평등’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생각이 때론 비합리적이기도 했다. 때론 창의적이었다. 홍 감독은 일체의 주입식 훈련을 없애고 아이들의 의견을 반영했다. 감독의 권한을 내려놓았다. 아이들은 마음껏 자기 의사를 표현했고 스스로 길을 찾아나갔다. 홍 감독은 포지션도 고정하지 않았다. 원하는 위치에서 아이들이 뛰게 했다. 투수,유격수,4번타자에 몰리자 아이들은 돌아가면서 포지션을 맡았다.

많은 지도자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한다. 기준은 성적이다. 홍 감독은 프로야구선수 출신이다. 2군에 머물렀지만 엘리트 체육의 장단점에 대해 잘 안다. 자신이 거쳤기에 그렇다. 단지 야구를 좋아해서 온 아이들이 기존 시스템 내에 길들여졌다.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했다. 야구를 잘 하는 아이들만 줄곧 기용되었다. 승리를 위해 아이들은 선행학습도 하게 된다. 중학생 선수가 고등학생의 기술을 익힌다. 성적은 반짝한다. 그러나 인생은 마라톤이다. 많은 선수들이 마지막 허들을 남겨놓고 나가떨어졌다. 홍 감독이 수없이 본 장면이다.

홍 감독의 기준은 성적이 아니다. 다양한 경험을 공정하게 나누는데 있다. 초반엔 학부모의 불평도 있었다. 왜 포지션을 고정하지 않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홍 감독은 포지션마다 뇌기능과 신체 발달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이기는 것 보다 다양한 참여가 중요하다고 설득했다. 쉽지 않았다. 그러나 홍 감독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학부모가 아닌 아이들의 눈높이에 철저하게 맞췄다. 그리고 놀라온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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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두번째 경기였다. 첫 경기를 마치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데 상대는 엘리트 팀이었다. 전대회 우승팀이었다. 패배가 확실해보였다. 그런데 두루두루 기용된 아이들이 집중력을 발휘하며 승리했다. 야구를 시작한지 한 두달 밖에 안된 아이들도 많았다. 옆에서 보기엔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팀이지만 본색은 달랐다. 시키면 잘 하고 시키지 않으면 안하는 아이들이 아니었다. 자발적으로 경기를 풀어갔고 의외의 선물을 받았다.

학부모의 반응도 바뀌었다. 학부모 중에 교사도 있었는데, 그는 홍 감독에게 찾아와 “아이가 달라졌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수동적인 아이가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또한 북구 유소년 팀에선 학부모가 감독에게 잘 보일 이유나 필요성이 없었다. 아이들에게 기회가 평등하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꿈은 프로야구 선수다. 홍 감독은 꿈과 현실의 차이를 알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꿈을 응원한다.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훈련하는 모습을 보며 늘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아이들이 더 자라면 다른 꿈이 자라날 것을 안다. 그러나 몸이 기억하는 지금의 습관이 다른 꿈을 위한 동력이 되길 바라는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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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 유소년 야구팀의 한달 회비는 10만원이다. 홍 감독은 그 회비를 모아 훈련장을 빌리고 연습경기 일정을 잡는다. 공식대회는 등록비와 출전비가 들어가기에 피한다. 홍 감독은 아이들의 유니폼 비용을 따로 받지 않는다. 회비에 포함이다.

게다가 홍 감독은 아이들에게 야구화, 배팅 장갑 등을 슬쩍슬쩍 선물한다. 아이들은 감독의 애정을 느낀다. 서로를 끈끈하게 해주는 긍정의 선물이다. 사실 한달 회비 10만원으로 야구팀을 유지하기에 빠듯하다. 그래서 홍 감독은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 방과후 교실에서 야구도 지도한다. 그 아이들이 야구팀에 들어올때는 한달 회비가 6만원으로 줄어든다. 방과후 교실에 낸 금액을 제하기 때문이다.

홍 감독이 야구팀은 운영하고 유소년 선수를 지도하는 방식은 확실히 다르다. 그러나 홍 감독은 자신의 방식이 맞고 다른 이의 방식이 틀리다고 말하지 않는다. 방법이 다를 뿐이라고 했다. 그 차이는 주입식이 아닌 아이들이 스스로 하게끔 도와주는데 있다. 홍 감독이 시도는 작지만 크다. 스포츠 패러다임의 새롭고 긍정적인 변화임에 틀림없다.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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