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원
대한철인3종협회 박석원 회장이 2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개최한 철인3종경기 선수 가혹행위 및 체육인 인권실태 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장강훈기자 zzang@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고(故) 최숙현 선수의 희생은 역설적으로 한국 체육계가 얼마나 썩어있는지를 만천하에 공개하는 열매로 돌아왔다. 동시에 뿌리째 뽑아 새싹을 틔워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남겼다. 관련 법률 개정안을 잇따라 발의하고 사태 해결을 위한 청문회까지 여는 등 국회가 관심을 갖기 시작한 점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눈길이 모인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22일 국회 문체위 본회의실에서 철인3종경기 선수 가혹행위 및 체육분야 인권침해에 대한 청문회를 개최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박양우 장관과 최숙현 사태 특별조사위원장을 겸임 중인 최윤희 2차관,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박석원 대한철인3종협회장,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등 이번 사태를 사실상 방치한 주무기관 단체장들이 증인 및 참고인 신분으로 국회를 찾았다. 그러나 최숙현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고간 직접 가해 당사자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국회의 출석명령을 거부해 공분을 샀다.

부친
고(故) 최숙현 선수의 부친 최영희씨(앞줄 오른쪽)가 2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개최한 청문회에 참석해 의원들을 바라보고 있다. 장강훈기자 zzang@sportsseoul.com

힘겨운 발걸음으로 국회를 찾은 고인의 부친 최영희씨는 “뒤늦게 국회와 언론의 관심으로 (최)숙현이의 한을 풀 수 있게 돼 고맙다”면서 “더이상 운동선수들이 피해를 받지 않도록 최숙현법을 반드시 입법화 해주시기 바란다”고 읍소했다. 최숙현의 동료들도 핵심 가해자로 지목된 경주시청 철인3종경기팀 주장 장윤정의 폭행 및 가혹행위 실체를 추가 폭로하며 “지금이라도 죄를 인정하고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핵심 증인이 불출석 해, 이들이 어떤 이유로 팀 동료에게 폭행과 폭언을 가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문체위 소속 의원들이 공개한 조사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경북철인3종협회가 허위 공문서 발급 등으로 사실상 경주시철인3종팀의 횡령 등을 눈감았고, 경주시체육회는 여행사를 통해 김규봉 전 감독에게 빼돌린 훈련비를 개인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줬다. 실제로 김예지 의원(미래통합당)이 입수한 문건에는 2017년 2720만원 규모였던 해외 전지훈련비가 2018년부터 6011만원 이상으로 훌쩍 뛰어 올랐다. 김규봉 감독과 주장 장윤정이 사실상 경주시체육회를 사유화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주낙영
주낙영 경주시장이2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개최한 철인3종경기 선수 가혹행위 및 체육인 인권실태 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장강훈기자 zzang@sportsseoul.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증인과 참고인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핵심 가해자 중 유일하게 청문회에 참석한 경주시청 철인3종경기팀 김도환은 “김 전감독이 최숙현을 폭행한 사실이 맞다”고 인정하면서도 “쇠파이프나 각목 등 둔기로 때리지는 않았다”고 피의 사실을 축소하려는 뉘앙스를 풍겼다. 그러면서도 “야구방망이로 맞기도 했다”거나 “김 감독이나 안주현 씨 모두 폭력성향이 강했다”고 진술해 자신의 발언을 뒤집기도 했다.

문체부와 대한체육회 등 관리 감독 기관 수장들도 불리한 질문에는 “모르겠다”거나 “우리 소관이 아니다”는 식으로 즉답을 피해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문체부 박 장관은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스포츠윤리센터를 8월부터 가동한다. 스포츠혁신위원회가 권고한 52개 사항 중 아직 시행하지 않은 22건에 대한 연구용역을 조속히 끝내 개혁을 이뤄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얘기만 수 차례 반복했다. 이번 사태를 지난 2월부터 인지하고 있었다는 박석원 대한철인3종협회장은 “구두로 보고 받았기 때문에 당시로는 이 사안이 위중한줄 몰랐다”는 무책임한 답변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기흥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왼쪽)이 22일 국회 문체위 청문회에 참석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장강훈기자 zzang@sportsseoul.com

여야를 떠나 문체위 의원들은 고질적인 비리와 제식구 감싸기, 솜방망이 처벌로 체육계 위상을 크게 떨어뜨린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에게 “더이상 신뢰하기 어렵다. 자리에서 물러설 때”라고 강하게 압박했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논할 문제가 아니다”며 용퇴의사가 없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국회가 이례적으로 청문회까지 개최하며 체육계 폭력사태 근절을 위한 방법 찾기에 나섰지만, 당사자들의 답변 태도나 준비 과정은 ‘이 시간만 지나면 넘어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듯 했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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