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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김효원기자]코로나19로 인해 온 인류가 전대미문의 혼란을 겪고 있다. 각국은 빗장을 걸어잠궜고 자국 우선주의로 돌아섰다. 한창 꽃을 피워가던 공유경제도 얼어붙었다. 코로나19가 없었던 과거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얘기가 공공연하다. 문화인류학자 이희수(67)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위드(with)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서울 구로구 항동에 위치한 성공회대학교에서 이 교수를 만나 코로나시대에 갖춰야 할 삶의 태도와 방향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시대 대비해야코로나19는 과연 종식될 수 있을까? 이 석좌교수는 “인류가 바이러스를 퇴치한 역사는 한 번도 없다”면서 종식은 오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이 교수는 “에볼라, 에이즈, 사스, 메르스 등 바이러스는 하나도 안없어졌다. 같이 사는거다. 같이 살 생각을 해야한다”면서 “코로나라는 흉칙한 놈은 박멸의 대상이 아니라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코로나를 어떻게 끌어안고 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전세계를 강타하면서 초기 각나라마다 빗장을 걸어잠그고 강경하게 대응했고 그 과정에서 혐오, 배제, 고립, 자문화중심주의 등이 심화됐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강력한 바이러스로부터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방어기제가 작용했지만 이는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코로나에 대한 위기로 국경을 차단하고 있지만 길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인류는 이미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구조다. 실크로드가 뚫린 이후 1300년 가량 그렇게 살았기에 뒤바꾸기는 힘들다. 우리는 자기와 다른 생각, 다른 가치를 받아서 모순 속에서 부딪히며 진보와 개혁 등을 만들어낸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고립주의가 만연한 것 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형태의 국제기구가 등장해 한차원 높게 교류하게 되지 않을까 한다.”
이 교수는 인류의 역사상 전쟁과 질병이라는 두 가지 변수가 한정된 자원을 나눠써야 하는 인구를 조절하는 역할을 담당해왔다고 지적했다. 전쟁이 소멸되면서 질병이 맹위를 떨치는 모양새다.
“2차 세계대전으로 사망자가 7800만~8000만 명 가까이 된다. 세계 인구가 당시 23억이었다. 지금 세계 인구는 78억이다. 70년 사이 인구가 세배 반 늘었다. 인간의 인지가 발달하고 네트워크가 구축돼 대규모 전쟁은 없을 것이기에 임계점이 왔다. 삶의 패턴이 근원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그가 최근 가장 깊게 생각하는 화두는 ‘공존’이다. 그동안에도 이슬람 문화를 공부하면서 공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지만 요즘같은 코로나 시대에서는 코로나와의 공존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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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페르 아우구스투스 튤립이 있다. 17세기 튤립 광풍을 일으킨 품종이다. 튤립은 오스만터키 왕실의 산물이었는데 유럽 외교관들이 꽃에 반해 자국으로 돌아갈 때 구근을 가져가 심었다. 그러나 유럽은 습하고 햇빛이 적어 구근을 심으면 10개 중 9개는 썩었다. 바이러스와 싸우던 꽃은 다 죽었는데 바이러스를 받아들여 살아남은 꽃이 셈페르 아우구스투스 튤립이었다. 바이러스를 받아들이고 적과 공존하면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운 이 듈립은 당시 대저택 한 채 값과 맞먹었다. 코로나는 박멸할 수도 퇴치할 수도 없다. 인류도 극악한 바이러스를 끌어안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 혐오와 배제가 아니라 새로운 조화와 창조성을 만들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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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은 욕망을 줄이고, 기업은 생산을 줄이고
기업이나 개인을 대상으로 강연을 자주 다니는 그가 최근 강연에서 가장 자주 이야기하는 것은 ‘욕망 줄이기’다. 인류가 임계점을 극복하고 공존하기 위해서는 그동안의 대량 생산→과소비의 패턴이 아니라 적정 생산→필요 소비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
이 교수는 “지금까지 자본주의가 최고 가치로 자리잡으면서 기업이 대량생산하고 인간의 무한 욕망을 부추기는 광고 마케팅으로 과소비를 부추겼다. 이 트랙을 바꿀 때가 왔다. 교육, 담론, 정책 등에서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줄이고 절제할 것인가 논의해야 한다. 그러면 기업도 적정 생산하게 되고 개인은 필요한 소비만 하게 된다”고 말했다.
스마트한 삶을 꾸려가야 하는 숙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그는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좋아하고 보람있는 일을 즐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런 삶이 바로 스마트한 삶이다. 권력과 자본을 얻을 수 있는 특정한 직업만을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하지 않는 것에서 가치와 보람을 찾는 삶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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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싸더라도 우리 농산물 먹는다는 생각 필요
지금은 농업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중요한 시점이라는 점도 짚었다. 지금까지 세계에서 생산되는 값싼 농산물을 수입해 소비하면서 우리나라는 농산물 수입 의존도가 세계 상위를 기록하고 있다. 쌀을 뺀 농산물의 식량자급도는 5% 미만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장기화되면 식량의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위기 상황에서 기본적으로 자급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 그동안 값싼 농산물을 수입해 싸게 먹었다면 앞으로는 좀 비싸더라도 우리 농산물을 먹겠다는 인식이 싹터야 한다.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고 우리 토양과 전통에 대한 가치를 지켜나가면서 우리 농산물을 생산하는 가치가 생겨야 한다.”
이 교수는 올해 인류의 역사를 동양사, 서양사가 아니라 중양(middle ocean)사로 바라볼 것을 제안하는 책을 집필했다. 17년전 구상했던 내용으로 최근에야 집필을 마치고 출간을 앞두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인류 역사를 동양사, 서양사로 양분해서 배웠다. 세계 4대 고대문명 중 3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문명이 중동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트로이, 히타이트, 아시리아, 프리기아, 페르시아 같은 인류 문명의 뿌리가 아나톨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동양과 서양으로 퍼져갔음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많이 왜곡돼왔다. 제가 중양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중양을 지배했던 역사를 고대 메소포타미아 이전부터 지금까지 하나의 통사로 정리하고 그 안에서 동서양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정리했다. 우리나라는 1200년전부터 중동과 교류하며 중동의 영향을 받았다. 우리 문화의 뿌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대학교수로 평생을 연구에 헌신한 그는 자신이 배운 학문을 제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보람으로 느끼며 살아왔다. 제자들이 자신의 지식을 남은 한 방울까지 짜내 가져가기를 바라기에 스스로 ‘레몬같은 교수’라고 생각해왔다.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해 지도교수님께 근사한 말씀을 부탁드렸더니 ‘교수는 레몬이야’라고 하셨다. 지금까지 제자들을 가르치며 그 의미를 생각해보니 레몬처럼 제자들에게 남은 한 방울까지 짜서 전해주라는 의미같았다. 지금도 제자들에게 내 지식을 다 쥐어짜서 가져가라고 말한다. 남들에게 전달하면서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 지식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eggroll@sportsseoul.com
<이희수 프로필>
1953년 7월생. 한국외국어대학교 터키어학 학사를 받고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중동지역학 석사를 받았다. 1988년 이스탄불대학교대학원 역사학 박사. 1989년 이슬람회의기구 연구원, 한국터키친선협회 사무총장, 한양대학교 국제문화대학 문화인류학과 교수, 한국중동학회 회장, 터키 마르마라대학 교수 등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 ‘이슬람 학교’, ‘톡톡 이슬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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