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현의 창과 창 컷

[스포츠서울 | 고진현전문기자]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다. 대한빙상경기연맹(회장 윤홍근)이 안타깝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지난 22일 진천선수촌내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저질러 또 다시 ‘사고뭉치 단체’라는 오명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음주운전을 한 김민석(23·성남시청)이 촌내 보도블록 경계석을 들이받는 사고를 낸 뒤 3명의 동승자와 함께 차를 버리고 도망갔고 이를 본 타 종목 선수들의 신고로 사건이 외부로 알려졌다. 외부에서 술을 먹은 이들이 촌내로 들어올 때는 다른 음주 선수가 차를 몰아 결과적으로 두 명이 음주운전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체육계에 굵직한 추문과 사건이 터졌다 하면 십중팔구 빙상과 쇼트트랙이니 연맹 관계자의 입장에선 환장할 노릇이다. 동일한 일이 계속 벌어지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 속엔 반드시 이유가 존재하기 마련이며 꽁꽁 숨어 있는 그 원인을 냉정하게 짚어내지 못하면 앞으로도 꼬리를 무는 사건 사고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렇다면 꼬리를 문 추문과 사건의 원인은 무엇일까? 골 깊은 파벌갈등이 어른싸움을 넘어 전방위로 만연돼 있음을 방증한다. 지도자와 경기인의 어른싸움이 이젠 몸집을 키워 선수들 사이에서도 바이스러스 번지듯 펴졌다는 걸 보여준다. 어른싸움이 아이싸움으로 확전된 셈이다. 소속팀과 지도자는 선수들의 입장에선 남이 아니다. 그들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바로 선수들의 나약한 처지다.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어른싸움의 진영논리 안으로 끼어들어갈 수밖에 없다. 선수들이 어른싸움의 또 다른 주체로 가담하면서 얼음판의 갈등과 싸움은 더욱 치열해졌고 복잡해졌다. 그 결과 선수들은 소속팀과 지도자들의 편을 들어주기 위해 사건을 축소·은폐하거나 아니면 왜곡·과장하는 짓까지 서슴치 않는다. 윤리의식과 도덕은 찾아보기 힘들다.

선수들의 파벌싸움 가담은 또 다른 이해관계 형성으로 이어진다. 직업인으로 가장 중요한 실업팀 입단도 이러한 파벌싸움의 연장선에서 거래되고 흥정된다. 얼음판의 파벌싸움이 점점 심해지고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는 이유다. 타종목에 견줘 선수들의 윤리의식은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다. 윤리의식보다 진영의 이해관계에 익숙해지고 친밀해져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파벌싸움에 선수들이 개입하게 되면서 선수들의 의식구조는 오로지 내편이냐, 네편이냐라는 이분법적 판단에 지배당하게 된다. 옳고 그름은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자기 편이 문제를 일으키면 감싸주고 덮어주기에 급급할 뿐이다. 반대편이 사고를 치면 외부에 이 사실을 고자질하듯 적극적으로 알리는데 가담하곤 한다. 빙상과 쇼트트랙 선수들이 일으키는 사건 사고가 매스컴에 쉽게 노출되는 이유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문제가 없다는 건 결코 아니다. 분명한 건 이들이 타 종목에 견줘 현격히 처지는 윤리의식을 갖고 있으며 그 결과 국민들의 낯을 찌푸리게 하는 사건 사고를 잇따라 저지른다는 사실이다.

이번 사건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선수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이어진 각종 사건을 입체적으로 놓고 보면 결국 타 종목에 견줘 눈에 띄게 떨어지는 윤리의식 탓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엄중한 처리는 당연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건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본질이 아닐까 싶다. 본질에 대한 근원적 처방, 그게 없다면 연맹은 사고뭉치 단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겉으로는 빙상을 위한다는 명분이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치졸한 이해관계에 불과한 어른들의 개싸움에 종지부를 찍지 못한다면 빙상의 미래는 없다. 연맹도 이젠 애꿎은 변죽만 울리지 말고 현상 이면의 본질을 꿰뚫어야 할 때다.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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