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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조은별기자]‘파리의 연인’부터 ‘도깨비’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 작가 김은숙이 로맨스를 버렸다.
남녀 주인공의 거품키스(‘시크릿가든’)나 훤칠한 남자주인공들의 런웨이(‘도깨비’) 대신 작가가 택한 건 칼춤을 출 망나니와 정적인 바둑이다. 지난 달 30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얘기다.
‘더 글로리’는 학창시절 학교폭력을 당했던 피해자의 복수극이다. 지난 달 30일 1부부터 8부를 담은 파트1 공개 직후 온라인 콘텐트 서비스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 패트롤’에서 1일 기준, 전 세계 5위를 기록했다.
온라인에서는 “날밤을 샜다”는 반응부터 3월 공개되는 파트2가 궁금하다는 원성이 자자하다. 남녀의 사랑대신 복수를 택했음에도 시청자들의 마음을 뒤흔든 비결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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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로리’의 가해자 무리들은 잔혹하다. 주동자인 박연진(신예은·임지연 분), 조력자인 전재준(박성훈 분), 이사라(김히어라 분), 최혜정(차주영 분)의 학교폭력에는 이유가 없다.
방법도 잔인하다. 고데기와 다리미로 사지를 지지는 폭행은 주먹과 무기 없는 폭력의 신기원을 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해자인 문동은(송혜교 분)은 억울하다. 단지 집안이 불우하다는 이유만으로, 보호자가 부재하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안전망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오히려 그를 보호할 부모와 교사는 가해자의 재력에 눈을 감는다. 어머니는 합의금을 받은 뒤 도망치고, 담임교사는 가해자들을 경찰에 신고한 동은을 나무라며 폭행한다. 고교 시절 동은이 기댈 곳은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더 글로리’는 가해자의 폭력에 서사를 지워 피해자가 왜 관용없이 응징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한다. ‘사연 있는’ 악인 대신 마블시리즈의 타노스같은 절대 악인을 내세워 시청자가 절대적으로 피해자를 응원하며 연대하게끔 한다.
학창시절 학교폭력 가해자였던 이들은 성인이 된 뒤에도 불륜, 혼외출산, 마약, 원고대필, 그림대작 같은 짓을 저지르며 교묘히 도덕과 법망을 피하는 삶을 산다.
작가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제일 쉬운 문제라니깐”같은 대사를 통해 이 모든 비행의 뒷배가 ‘재력’이라고 설명하며 물질만능주의에 찌든 이들의 추악함을 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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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입은 고통은 처절한 핏빛으로 물들었지만 가해자를 향한 복수에는 우아한 서늘함이 깃들었다. 주인공 동은을 연기한 송혜교의 물기 없는 표정에는 복수를 향해 평생을 살아온 여인의 냉철한 분노와 적개심이 깊이 배었다.
“항상 이런 역할에 배고팠다”는 송혜교는 짙은 메이크업 대신, 단정한 단발과 무표정으로 복수의 칼날을 간다. 곳곳의 화상 자국은 그가 복수를 이어가는 이유를 시각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
고데기로 지진 상처가 뜨거워질수록 동은의 가슴 속 한은 한겨울 소복소복 내리는 눈처럼 차가워진다. 송혜교의 연기에 대해 포브스는 “송혜교의 미묘한 연기가 가해자에 대한 복수에 집착하는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고 호평했다.
광기어린 악행을 표현한 연진 역의 임지연도 주목해볼만 하다. 비행청소년으로 학창시절을 보냈던 연진은 타인의 시선을 끄는 기상캐스터로 인생 2막을 화려하게 연다.
하지만 능력보다 배경을 활용하는 능력은 성인이 돼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재력있는 남성과 결혼 뒤, 남편의 광고 협찬으로 기상캐스터의 삶을 연장하고, 원고 한줄 쓰지 못해 고용한 대필작가에게 “푼돈으로 방금 내가 쟤 하늘이 됐어”라고 비웃는 연기는 잠자는 분노를 일깨울 만큼 얄밉다.
무엇보다 응축된 이야기를 펼쳐내 이끌어가는 김은숙 작가의 뚝심과 곳곳의 찰진 대사는 작가의 명성이 헛된 게 아니라는 걸 깨우쳐준다.
“사과하지 마. 넌 벌 받아야지. 신이 널 도우면 형벌, 신이 날 도우면 천벌”, “단 하루도 잊어본 적 없어. 어떤 증오는 그리움을 닮아서 멈출 수가 없거든”같은 대사는 마치 복수극인데도 로맨스물같은 중독성을 안긴다.
더불어 이야기의 빈틈에 설정한 ‘바둑’이라는 이색 매개체가 향후 주인공들의 행동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다만 ‘망나니’로 설정한 주여정(이도현 분)과의 뜬금없는 로맨스는 옥에 티로 꼽힌다. 3월 공개되는 파트2에서 이를 무마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mulga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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