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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조은별기자] ‘착한 처조카’. 지난 2주간 신문 헤드라인에서 가장 많이 쓰인 단어 중 하나다.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창업주인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이하 전 총괄)의 처조카 이성수(44) 현 SM 대표 이사가 이모부인 이수만 전 총괄에게 맞서 반기를 들자 언론은 일제히 ‘처조카의 난’을 집중조명했다.
실제로 이대표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크리스 리’를 통해 이 전 총괄의 역외탈세 의혹, 아티스트 음악을 통한 해외 부동산 사업 계획 의혹 등을 폭로하며 이모부를 향해 선전포고를 날렸다. SM이 이성수, 탁영준 2명의 공동대표 체제임을 감안한다면 ‘처조카’ 이성수 대표가 전장에서 지나치게 부각된 셈이다. 분쟁 당사자인 이수만 전 총괄이 “4살 때부터 본 착한 처조카”라며 이 대표는 싸움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음에도 이 대표는 왜 저항군 대장으로 ‘광야’에 나섰을까.
◇‘교회 오빠’였던 이 전 총괄 거수기…이모부 만행 참지 못했을 것1979년생인 이성수 대표는 이수만 전 총괄의 사별한 아내 고(故) 김은진 씨 언니의 아들이다. 목사인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독실한 신앙인이기도 하다. 실제 그는 SM 대표로 취임하기 전까지 서울 강남의 한 교회에서 성가대로 장시간 활동했다. 이 대표와 함께 성가대 활동을 했던 한 관계자는 “조용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인품이 훌륭한 대원이었다. 그가 SM대표가 돼 활동을 그만두기 전까지 SM에 근무하는지 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고 귀띔했다.
걸그룹 에스파의 세계관인 ‘광야’ 역시 구약성서 출애굽기에서 따왔다. 유대민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40년간 방랑생활을 하던 곳이다. 공교롭게도 지금은 이 대표 자신이 저항군이 된 임직원들을 이끄는 수장이 돼 광야에 섰다.
이런 배경에서 성장한 이 대표이기에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 파트너스가 이 전 총괄의 개인 회사 ‘라이크기획’의 일감 몰아주기를 비롯한 폐쇄적인 운영방식을 지적하자 자신의 손으로 인척인 이 전 총괄의 만행을 막아야겠다는 신념이 강했다는 전언이다.
이 대표를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지난 20년간 이 전 총괄의 거수기 노릇을 했던 이 대표는 역외탈세 등 여러 의혹을 폭로할 경우 회사의 대표인 자신도 법적인 책임을 피하지 못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면서도 “이번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도 자료를 들고 스스로 검찰에 갈까 고민할 정도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곤 했다”고 귀띔했다.
얼라인 파트너스의 공세로 시작했지만 SM 내 황제경영의 심각성에 공감한 임직원들이 의견을 함께 했다. SM 이사 26명 중 25명이 이수만을 배제한 ‘SM 3.0’체제에 공감의 뜻을 표했다. 특히 이수만 전 총괄이 자신의 지분 80%를 경쟁사인 하이브에 넘기면서 ‘반 이수만 체제’가 불타올랐다.
SM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이사진들 대부분이 20년 이상 자신의 청춘을 회사에 바쳤던 이들이다. ‘딴따라’라고 불렸던 엔터테인먼트 업종을 산업으로 키워내며 K팝의 세계화에 일조했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더욱이 지난 20년 동안 이 전 총괄의 ‘1등주의’에 길들여졌던 이들이 대다수이기에 이 전 총괄이 회사를 경쟁사인 하이브에 팔아넘긴 것에 대한 배신감이 컸다”고 전했다.
이 전 총괄의 과오를 명확하게 알고 있던 이사진들과 SM 직원 208명으로 구성된 평직원협의체가 이 대표와 함께 하겠다고 뜻을 밝히면서 ‘반 이수만 체제’가 견고하게 굳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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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프엑스·샤이니 세계관 만든 A&R 전문가…SM 자랑 ‘송라이팅 캠프’도 이대표 실적
이번 사태를 놓고 음반제작사 440여곳을 회원사를 두고 있는 사단법인 한국연예제작자협회(이하 연제협, 회장 임백운)는 “그동안 이수만 프로듀서의 후광을 통해 고속승진하며 공동대표 자리까지 오른 이성수 공동대표가 과연 현재의 SM이 있기까지 기여한 공로가 무엇인지 따져 묻고 싶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일부 누리꾼들도 댓글을 통해 “처조카라 대표 자리에 올랐는데 뒤통수를 쳤다”며 이대표를 폄하했다.
그러나 SM 시스템을 잘 아는 관계자들은 “SM이 처조카라고 대표가 되는 호락호락한 기업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이 대표는 1998년 팬 모니터 아르바이트 요원으로 SM과 인연을 맺었다. 2005년 A&R(아티스트 레퍼트와·아티스트 발굴 육성 제작 전반 관리) 부서 직원으로 정식 입사한 뒤 가수 겸 작곡가 출신 유영진 이사와 더불어 SM의 음악세계를 구축해왔다.
유 이사가 일명 ‘SMP’(SM music performance)라 불리는 SM 특유의 강렬한 음악을 맡았다면 이 대표는 ‘SMP’와는 다른 색을 내는데 주력했다. 소녀시대의 숨은 명곡 ‘라이언 하트’나 SM에서 가장 독특한 음악색을 보였던 에프엑스, 샤이니의 음악세계는 이 대표가 A&R본부장 시절 탄생했다.
대다수 음악 관계자들은 “지금은 하이브로 간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SM 재직 시절 샤이니와 에프엑스의 비주얼을 담당했다면 당시 그들의 음악세계를 만든 게 이성수 대표”라며 “민희진 대표 특유의 자기 과시욕 때문에 이 대표의 공적이 가려진 케이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지금의 K팝 집단 창작 시스템인 ‘송라이팅 캠프’를 구축하며 K팝의 글로벌화에 일조했다. ‘송라이팅 캠프’는 전세계 신진 작곡가와 프로듀서들이 함께 하는 네트워크다. 영미권은 물론 유럽 작곡가들까지 K팝에 대한 이해도를 넓히게 된 것도 SM의 ‘송라이팅 캠프’역할이 컸다.
SM은 ‘송라이팅 캠프’를 통해 1년에 2만 곡 가량을 수급해 왔다. 국내 프로듀서 중에서는 히치하이커, 라이언전, 황현 등이 해외 프로듀서 중에서는 런던노이즈가 대표적인 SM 송라이팅 캠프 출신이다.
한 관계자는 “처조카라서 대표로 고속승진했다기보다 A&R에 능통한 처조카를 둔 이수만 전 총괄이 복받은 격”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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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직에서 백의종군…법원판결·주주총회 뒤 거취 관심집중
물론 이번 SM사태에서 보여준 이 대표의 전략이 100% 옳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각에서는 “이 대표가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나서서 이 전 총괄의 화를 북돋웠다”라는 지적도 나왔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이 대표와 매니저 출신 탁영준 대표가 끝까지 이 전 총괄을 예우하며 카카오를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이 전 총괄이 자신의 지분을 하이브에 넘기는 극단적인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듀서 이성수의 자질은 훌륭하지만 기업인 이성수의 자질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처조카의 난’은 법원의 판결에 따라 판가름 날 공산이 크다. 이 전 총괄은 SM 현 경영진이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카카오에 신주와 전환사채를 발행한 것에 반박해 가처분 신청을 낸 바 있다. 법원은 이르면 이번주 중 판단을 내릴 것으로 관측된다.
이 대표는 3월 말로 예정된 주주총회 뒤 대표이사 자리를 내려놓고 본업인 음악 파트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대주주인 하이브의 뜻에 따라 회사를 떠날 가능성도 남아있다. 과연 그는 회사에 남아 SM의 ‘핑크 블러드’를 지킬 수 있을까. ‘성수동 광야’에 서 벌어진 ‘성수의 난’에 연예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mulga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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