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조은별기자] “이선균 씨와 영화 개봉하면 동반이민 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의 ‘콸라섬’은 어디일까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14일 개봉한 영화 ‘킬링로맨스’의 주인공 이하늬는 촬영기간 내내 매일 ‘현타’(‘현실 자각 타임’의 준말. 헛된 꿈이나 망상에 빠져 있다가 실제 상황을 깨닫게 되는 시간)가 왔다고 했다.

162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극한직업’(2019)과 SBS ‘열혈사제’(2019), ‘원더우먼’(2021)에서 몸 사리지 않는 ‘볼 떨리는’ 연기로 코믹퀸 자리를 거머쥔 그조차 ‘킬링로맨스’의 과감한 발상 전환과 독특한 웃음 코드를 해석하느라 애를 먹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이하늬는 “처음에는 치약맛 같은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이 나중에 중독되는 것처럼 이 영화는 마니아 관객을 양산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보물지도 같은 대본…스태프들이 웃어 NG내기도

영화는 발연기로 혹평받은 톱스타 여래(이하늬 분)가 휴가차 들른 가상의 섬 콸라섬에서 재벌 조나단 나를 만나 홧김에 결혼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조나단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기차처럼 긴 차와 섬을 통째로 보유한 재력을 지녔다. 뿐만 아니다. H.O.T ‘행복’을 프러포즈송으로 부를만큼 로맨틱한 면모까지 갖춘 완벽한 남자다. 그러나 실상은 여래를 자신의 관광지 조성 사업에 이용하기 위해 49㎏의 체중을 유지하며 바비인형같은 미소를 짓도록 가스라이팅한다.

여래는 감옥같은 결혼생활에서 탈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조나단과 사업차 한국에 돌아온 여래는 자신의 팬클럽 출신인 이웃집 4수생 범우(공명 분)의 조력을 받아 ‘남편 죽이기’에 돌입한다.

그렇다고 심각한 장면을 상상한다면 오산이다. 무술 고수이자 재력가인 조나단을 죽이기란 쉽지않다. 그래서 찜질방 오래 버티기, 청국장에 땅콩가루 타기 등 기상천외한 살인 방법이 등장한다. 여기에 조나단 때문에 삶의 터전과 짝을 잃은 아프리카 타조까지 역습에 가세한다.

“찜질방에서 여래가 조나단을 죽이려다가, 조나단의 강요로 ‘푹쉭확쿵’이란 말을 랩으로 하는 장면이 있다. 대본을 읽으며 마치 보물지도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도 속 단서를 가지고 내가 풍성하게 만드는 재미가 있었다. 너무 열심히 했는지 배우들보다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보는 카메라 감독님이 웃어서 NG가 나기도 했다.”

극중에서는 여래의 몸무게가 49㎏으로 설정돼 있지만 키가 170㎝를 훌쩍 넘는 이하늬의 체격상 도달하기 힘든 몸무게다. 이하늬는 “골든리트리버가 아무리 체중을 감량한다 해도 치와와가 될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며 “대신 현장에서 식단을 엄격히 제한하고 매일 운동을 했다”라고 웃었다.

◇악플·가정폭력 등 여성 연기자로서 공감대 多

영화는 107분 내내 시트콤 혹은 뮤지컬 같은 상황이 펼쳐지지만 마냥 배를 깔깔 잡고 웃기에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 여래가 발연기로 연예계를 떠날 결심을 하는 장면에서는 여래의 얼굴과 발이 합성된다.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 누리꾼들의 악플을 연상케 한다.

연예계 복귀를 갈망하는 여래에게 조나단이 귤을 마구잡이로 던지며 겁을 주는 모습에서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고통을 읽을 수 있다.

“여래는 마냥 웃기기만 하는 캐릭터가 아니다. 사회에서는 발연기라는 조롱을 당하고, 가정에서는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심신미약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그래서 여래의 민낯이 소중했다. 그가 조나단한테 학대를 당한 뒤 홀로 있는 장면에서 아름답게 치장한 여래의 실제 삶이 어떤지 겹겹이 쌓인 감정선을 표현하려 했다.”

배우가 직업인 사람으로서 여래라는 캐릭터는 더 특별하다.

그는 “나 역시 ‘오버워킹(과로)’을 하다 부러진 적이 있다”며 2017년을 떠올렸다. 당시 이하늬는 영화 ‘브라더’, 드라마 ‘역적:백성을 훔친 도둑’과 뷰티 프로그램을 한번에 다 소화했다.

“설상가상 대학원에서 박사과정까지 밟고 있었다. 차에서 쪽잠을 자고 깨면 현장에서 바로 역할에 들어갔다. 2년동안 휴식 없이 일만하다보니 가야금 연주를 할 때 손이 떨리고 척추가 흔들리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이하늬의 ‘콸라섬’은 여행이었다. 스킨스쿠버 여행, 요가 여행 등 각양각색의 여행을 즐기며 휴식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그는 “타인에게 자신을 노출하며 감정 노동을 하는 직업이다 보니 여래의 상황에 깊이 공감했다”고 했다.

그래서 이하늬에게 ‘킬링로맨스’는 도전이자 소중한 작품이다. 그는 “주저없이 작품을 택했고 성장하고 성숙했다”며 “다양성이 한국영화의 힘인만큼 제2, 제3의 ‘킬링로맨스’가 나오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mulgae@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