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런던=김민규기자] T1과 빌리빌리 게이밍(BLG)의 최종 결승진출전 맞대결. 2세트가 끝난 후 멋진(?)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1, 2세트를 따낸 BLG 탑 라이너 ‘빈’ 천쩌빈이 카메라를 향해 ‘3-0 승리’를 의미하는 세리머니를 하자 T1 원거리 딜러 ‘구마유시’ 이민형이 곧바로 ‘3-2 역전승’ 세리머니로 응수했다. T1 선수들이 ‘승리를 향한 의지’를 드러낸 대목이다.

한국 젠지에 이어 T1까지 차례대로 중국에 무릎을 꿇었다. 올해 첫 국제대회 출전인 BLG는 이번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에서 예선전부터 치르고 올라오며 경험치를 쌓았다. 이는 경기력 상승세로 이어졌고 지난 19일(한국시간) 젠지에 3-0으로 완승, 20일에는 T1을 3-1로 침몰시켰다. 우승을 바라본 한국으로선 제대로 자존심을 구긴 셈이다.

모든 일이 생각한 대로, 마음먹은 대로 다 이뤄질 순 없다. 한국에 ‘런던 참사’로 기억될 올해 MSI도 마찬가지다. 대회마다 변수는 있지만 전문가들은 젠지와 T1을 우승 전력으로 판단하며 ‘대권주자’로 분류했다. 반면 중국의 1번 시드 징동 게이밍(JDG)은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으면서도 BLG는 상대적 약체로 평가했다.

판단착오였다. 선수와 코치진, 팬도 BLG에 한국팀이 연이어 탈락할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 다르게 해석하면 JDG는 경계하면서 BLG는 논외로 뒀다. 방심했다는 얘기다. 생각지 못한 패배여서 그 충격은 배가 될 수밖에 없다. LCK 팀들은 6년 만에 ‘MSI 우승 탈환’이란 각오로 나섰지만 결승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이게 현실이다.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LCK 팀들의 암흑기도 존재했다. 2017년까진 LoL 국제대회 양대 산맥인 MSI와 LoL 월드챔피언십(롤드컵)에서 한국의 독주체제였다. 그러나 2018년 MSI 당시 킹존이 중국의 로얄네버기브업(RNG)에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한 후 그해 안방에서 열린 롤드컵에선 중국 팀에게 혼쭐이 나며 4강 문턱에도 오르지 못했다. 2019년에도 유럽과 중국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당시 여기저기서 ‘e스포츠 종주국의 위상’을 얘기하며 성토대회가 열렸다. ‘우물 안 개구리’로 전락한 LCK 팀들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2020년부터 당시 담원 게이밍(현 디플러스 기아)을 필두로 다시 대권에 오르기 시작하더니 지난해 롤드컵에선 중국 팀을 모두 탈락시키며 결승전을 ‘LCK 내전’으로 이뤄냈다.

단 중국의 조롱(?)만큼은 기억에 새겨야 한다. BLG의 ‘타베’ 웡박칸 감독의 예의도, 존중도 없었던 무례한 행동에 대한 얘기다. ‘타베’ 감독은 지난 19일 젠지에 승리한 뒤 젠지 진영으로 달려가 세리머니를 한데 이어 전날 T1전에선 아직 경기가 진행 중임에도 무대로 뛰쳐나와 제지를 당하는 꼴을 보였다. 승리의 기쁨을 표현하는 것은 자유지만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은 있어야했다.

젠지와 T1 감독은 MSI 패배 원인을 알고 있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다전제의 ‘티어 정리’와 밴픽을 꼽았다. 일각에선 ‘왜 미리 대비를 안 했느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문제점을 명확히 알고 있다면 다음 대회에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 오히려 보완과 개선을 거쳐 더 단단해질 수도 있다.

올해 대회가 아직 남아있다. 오는 9월 항저우아시안게임을 비롯해 5년 만에 안방에서 맞이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대회 롤드컵도 기다리고 있다. 한 번 미끄러졌기에 다시 일어나 아시안게임과 롤드컵에서 되갚아주면 된다. 절치부심(몹시 분하여 마음이 쓰린 것)하면 될 일이다. 다만 LCK 팀들 간 MSI의 경험을 함께 공유하고 발전해 나가는 것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km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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