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장강훈기자] 29년의 기다림, 마침내 축포를 터트렸다. 강산이 세 번 바뀌기 직전, 숙원 하나를 풀었다. 이제는 통합우승이라는 초목표를 향해 달린다.

LG가 2023 KBO리그 정규시즌 왕좌에 올랐다. 정규시즌 우승 가치를 높이 사지 않던 1994년이 마지막이니 지난한 세월을 보냈다. 시간은 유수처럼 흘렀지만 ‘서울의 자존심’을 회복하기까지 우여곡절로는 풀어낼 수 없을 만큼 힘겹게 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팬과 함께 축포를 터트리지는 못했다. 4일 롯데와 원정경기를 치르기 위해 부산으로 이동하던 버스 안에서 정규시즌 우승을 맞이했다. 구단 프런트는 떨어지는 낙엽조차 피해 다닐 만큼 행동을 조심했고, 지휘봉을 잡은 염경엽 감독은 “한국시리즈 직행 확정 전 오버하지 않겠다”며 자세를 낮췄다. 그만큼 간절한 우승이다.

시즌 135경기 만에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한 건 2018년 132경기 만에 우승한 두산에 이어 10구단 144경기 체제 두 번째 최소경기다. 2013년 플레이오프 직행으로 암흑기 탈출을 선언한지 10년 만에 한국시리즈 직행이자 시즌 우승팀 영광을 차지했다. 2019년부터 4연속시즌 포스트시즌 진출로 군불을 지피더니 드디어 대권에 도전할 기회를 잡은 LG다.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확정한 염 감독은 “우여곡절이 굉장히 많았지만 우리 선수들이 똘똘 뭉쳤다. 올시즌 내가 화 많이 내고, 잔소리도 많이 했지만, 선수들을 잘 이끌어준 코치들에게 고맙다”고 밝혔다.

이어 “현장을 지지해주고 믿어주신 구광모 구단주님, 구본능 구단주 대행님, 김인석 대표이사님, 차명석 단장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뒤에서 그림자처럼 지원해주신 점에 감사를 전한다. 또 우리 프런트들 전체, 팀장들부터 시작해서 모두들 현장에 도움을 주기위해 노력했다. 함께 고생한 프런트와 이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매년 우승후보로 평가됐지만, 고비를 넘지 못하던 LG는 올해 어떻게 최강팀이 됐을까. 지난 10년간 육성에 방점을 두고 스카우트부터 내실을 다진 게 큰 힘이 됐다. 2014년 개장한 이천 챔피언스파크는 육성 기치를 더욱 크게 외칠 자양분이 됐다.

그룹과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LG가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한 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앞선 탓이다. “우승이 아니면 실패”라는 것을 잦은 수장 교체로 증명했으니, 구단과 선수단 모두 급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도 선두에 2경기 차로 플레이오프 직행을 일궈냈지만, 키움에 덜미를 잡히자 류지현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고 새 사령탑을 앉혔다. LG의 숙원과 전통, 조급함을 모르지 않던 염경엽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긴 건 최선의 선택이었다. 염 감독 역시 넥센(현 키움)과 SK(현 SSG) 시절 대권 도전에 실패해 구겨진 자존심을 만회해야 한다는 집념으로 야구공부에 열을 올렸다.

실제로 LG는 염 감독 부임 이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변한 팀으로 올라섰다. 특히 ‘타격의 팀’으로 거듭나 투수들이 지쳤을 때 버틸 수 있는 무기를 장착했다. 타격의 팀으로 이미지를 바꾼 건, 염 감독이 강하게 강조한 두 가지 테마 덕분이다.

첫 번째는 개인별 루틴을 정립하는 것. 경기 때뿐만 아니라 경기 간, 타석 간, 투구 간 루틴을 만드는데 집중했다. 경기 간 루틴은 경기가 끝난 뒤 다음 경기 시작 전까지다. 더 세밀하게 쪼개면 경기 후 숙소 혹은 가정으로 돌아갈 때부터 다음날 구장에 출근해 팀 워밍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루틴이다. 어떻게 쉬고, 무엇을 먹느냐는 컨디셔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타석 간 혹은 투구 간 루틴은 공 하나에 대처하는 루틴을 뜻한다. 어떤 노림수로 초구를 맞이하는지, 볼카운트, 주자 상황에 따라 노림수를 변경할지 여부 등도 이 루틴에 포함된다.

루틴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경험에 비례하므로 시행착오는 필수다. 정립까지 시간은 걸리지만, 루틴이 필요하다는 명제를 의심하지 않는 분위기만 형성돼도 절반은 성공한 것으로 봐야한다.

여기에 확실한 공략법을 주문했다. 타자(주로 젊은)는 속구에 포커스를 맞추고 히팅포인트 앞에서 스윙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시속 150㎞짜리 속구를 제 타이밍에 때려낼 수 있으면 상대 배터리가 속구 승부를 쉽게 할 수 없게 만든다. 당연한 얘기인 것 같지만, 투구를 크게 속구-변화구로 나눌 수 있는데,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지워내는 셈이 된다. 무시할 수 없는 공략법이다.

벤치는 루틴 정립과 확실한 공략법의 중요성만 강조할 뿐 실패를 탓하지 않았다. 요소요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승리를 따내는 빈도가 높아지면서 자연스레 신뢰가 형성됐다. 책임은 벤치로, 성공은 선수로 돌릴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부임 한 시즌 만에 팀 색깔을 완전히 바꿔놓은 염 감독은 “야수 육성에는 실패했다”고 단언했다. 이미 한국시리즈 이후 목표를 설정했다는 의미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더 먼 미래를 내다보는 눈, 이 또한 이전의 LG에는 없던 모습이다. 바야흐로 ‘서울의 자존심, 팀 트윈스’의 시대가 도래했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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