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기자] 그야말로 청출어람이다. 영화 ‘넘버 3’(1997)로 한 시대를 풍미한 송능한 감독의 딸인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36) 감독이 데뷔작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상)에 작품상과 각본상에 노미네이트 됐다.
미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23일(현지시간) 제96회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로 ‘패스트 라이브즈’를, 각본상 후보로 셀린 송 감독을 각각 지명했다.
미국 내 외신은 “지난해 1월 선댄스 영화제에서 데뷔작을 처음 선 보인 송 감독이 1년 만에 오스카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에 오르는 건 이례적인 결과”라고 주목했다.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아카데미 역사에서 여성 감독이 데뷔작으로 작품상 후보에 오른 사례는 이번이 세 번째다. ‘작은 신의 아이들’(1986)의 랜다 헤인즈 감독과 ‘레이디 버드’(2017)를 연출한 그레타 거윅 감독이 작품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은 불발됐다.
만약 ‘패스트 라이브즈’가 이번에 작품상을 받게 되면 여성 감독의 데뷔작이 작품상을 받는 첫 번째 기록을 쓰게 된다.
지난해까지 아카데미 역사에서 여성감독 영화가 작품상 후보로 지명된 것은 총 19차례였으며, ‘허트 로커’(2008)를 연출한 캐스린 비글로 감독이 최초로 작품상을 받았다. 이후 두 번째 여성 감독 수상은 중국계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2020)다.
셀린 송 감독은 한국계 여성 감독으로는 최초로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한국계 또는 한국인 감독의 영화가 오스카 작품상 최종 후보에 오른 건 2020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2021년 한국계 리 아이작 정(한국명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 이후 세 번째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두 남녀가 20여년 만에 미국 뉴욕에서 재회하는 이야기다. 엇갈린 운명 속에 인생과 인연의 의미를 돌아보는 과정을 그렸다. 셀린 송 감독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직접 각본을 썼다. 영화의 상당 부분이 한국에서 촬영됐으며, 대부분의 대사가 한국어로 이뤄졌다.
한국계 미국인 배우 그레타 리가 12살에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는 여주인공 나영을, 한국배우 유태오가 첫사랑 상대인 나영을 그리워하다 그를 애타게 찾아가는 해성 역을 맡아 열연했다. 두 배우도 아카데미 연기상 예비 후보에 올랐으나, 연기상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다.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 내 ‘패스트 라이브즈’의 비평가 평균 점수는 96%다. 비평가들은 “근래 가장 인상적인 감독 데뷔작”,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처절한 성찰”, “세련된 이야기와 경험 많은 감독을 능가하는 연출” 등의 평을 남겼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작품상을 놓고 ‘오펜하이머’, ‘바비’, ‘아메리칸 픽션’, ‘추락의 해부’,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바튼 아카데미’, ‘플라워 킬링 문’, ‘가여운 것들’, ‘존 오브 인터레스트’ 등 9편과 경쟁한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펜하이머’는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남우주연상(킬리언 머피), 남우조연상(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 13개 부문에서 지명돼 최다 후보가 됐다. ‘오펜하이머’는 제81회 골든글러브에서 작품상 포함 5관왕을 차지하는 등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각본상 부문에는 셀린 송 감독을 비롯해 쥐스틴 트리에, 아르튀르 아라리(‘추락의 해부’) 데이비드 헤밍슨(‘바튼 아카데미’) 브래들리 쿠퍼, 조쉬 싱어(‘마에스트로 번스타인’), 새미 버치, 알렉스 메카닉(‘메이 디셈버’) 등과 트로피를 놓고 경쟁한다.
영화평론가 라이너는 스포츠서울과 통화에서 “‘플라워 킬링 문’을 비롯해 좋은 영화가 많지만 ‘오펜하이머’가 오스카 작품상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며 “셀린 송 감독의 행보는 주목할 만한 일이다. 남성이 주류였던 영화계에 최근 여성 감독이 점점 더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여성 감독이 기존 영화와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많이 보여주고 있다. 셀린 송 감독의 노미네이트는 이러한 시류를 반영하는 결과”라고 말했다.
한편,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는 3월 10일 로스앤젤레스(LA) 돌비 극장에서 열린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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