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가고시마=김용일 기자] “팬이 경기장에 오셨을 때 즐거움을 느끼는 것, 이제 가장 큰 목표가 됐어요.”
2024년 갑진년(甲辰年)에 FC서울과 재계약하며 ‘캡틴’으로 돌아온 축구계 대표 ‘용띠 스타’ 기성용(35)은 다부진 각오로 말했다. 새 시즌 대비 서울의 2차 동계전지훈련지인 일본 가고시마에서 만난 그는 “지난시즌 직후 미래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솔직히 은퇴까지 생각했다. 가족 아니었으면 (축구를) 그만하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2010년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등을 누비며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유럽파로 활약한 기성용은 2020년 하반기 ‘친정팀’ 서울에 복귀했다. 전성기에서 멀어지기 전 서울의 명가 재건을 이끌겠다는 진심이 닿았다. 이듬해 주장 완장을 차며 팀의 정신적 지주 노릇도 했다. 그는 미드필더진에서 녹슬지 않은 경기력으로 사랑받았다. 다만 팀이 원하는 수준의 결과를 얻지 못하면서 2022시즌 중반 주장 완장을 스스로 내려놓았다. 자신에게 집중한 스포트라이트를 분산하고 후배들이 책임감을 갖고 팀 재건에 앞장 서주기를 바랐다.
기성용은 삼십대 중반의 나이에도 서울 복귀 이후 세 시즌 연속 ‘한 시즌 35경기’에 출전했다. 그런 그가 지난시즌 직후 은퇴를 머릿속에 둔 건 허탈함에서 비롯됐다. 기성용은 “지난해 개인적으로 컨디션이 좋았다. 팀도 준비를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부진해) 회의감이 들더라”고 말했다. 서울은 지난해 K리그 구단 최초 한시즌 40만 관중 돌파에도 성적은 처참했다. 4연속시즌 파이널B(하위리그)에 머물렀다.
기성용은 2023시즌을 끝으로 자유계약(FA) 신분이 됐다. 팬 사이에서 ‘기성용은 곧 서울’로 통한다. 그럼에도 스스로 “과연 서울 재건에 필요한 선수일까” 고민했단다. 또 유럽축구연맹(UEFA) A급 라이선스 수료를 위해 한 달여 유럽을 돌며 세계적인 감독을 만나고 훈련 세션을 관찰하면서 다양한 미래를 그렸다.
그 시기 기성용의 마음을 다잡은 건 아내인 배우 한혜진과 딸 시온 양이다. 그는 “아내는 (내가 유럽에 있을 때) 빨리 들어오라더라. 아직도 나를 찾는 이들이 있는데 왜 축구를 그만두려고 하냐고. 딸도 아빠가 선수를 그만둘 수 있다는 것에 서운해하더라”고 말했다. 또 “아내와 딸 모두 내가 선수 생활을 지속하면 당연히 서울에 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가족의 지지 속에 기성용의 고민은 깊어졌다.
그의 마음을 확실하게 이끈 건 ‘서울 재건 특명’을 받은 새 사령탑 김기동 감독. 포항 스틸러스를 이끌며 어려운 여건에도 디테일한 전술, 지략으로 FA컵 우승 등 성과를 낸 그는 기성용을 ‘꼭 필요한 선수’로 점찍었다. “함께 해보자”는 감독의 메시지를 받은 그는 마침내 재계약을 결심했고, 가고시마 캠프에 합류했다. 김 감독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기성용을 세 번이나 설득해 다시 주장 완장을 채웠다.
기성용은 “감독께서 (현역 시절) 내 포지션(수비형 미드필더)이어서 와닿는 게 많다. 아직 짧은 경험이지만 전술이 디테일하다. 조직적이다. 포항에서 좋은 성적을 낸 이유를 알겠더라”고 치켜세웠다.
지도자 교육을 받으며 제2 인생도 그리는만큼 감독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싶은 의지도 있다. 또 지도자 자격 획득을 위해 유럽을 오가면서 느낀 것을 바탕으로 팀에 도움을 주고 축구 철학도 정립할 만하다. 기성용은 “세계 최고의 팀 중 하나인 레알 마드리드 선수가 경기 전날에도 자체 경기 때 지기 싫어서 태클하는 등 격렬하게 하더라”며 “모든 훈련 과정이 진지하고 몰입도가 다르다. 이런 분위기가 돼야 팀 훈련 템포가 올라간다. 감독께서 조직적인 것을 중시하는 만큼 나 역시 돕고 싶다”고 강조했다.
스완지시티 등 EPL 시절 맨유와 겨룰 때 맞대결한 제시 린가드가 깜짝 서울행을 결심하며 이슈몰이했다. 김 감독은 기성용에게 “우리 팀에 (너를 포함해) EPL 출신이 두 명이다. 네가 책임져야 한다”고 농담하며 린가드의 조력자가 돼 줄 것을 당부했다. 기성용은 “린가드에게 팀이 얼마나 기대하는지 등 잘 얘기해주면서 적응을 도와야 할 것 같다”고 화답했다. K리그에서 상상할 수 없던 ‘기린(기성용+린가드) 콤비’가 탄생하는 것이다.
끝으로 기성용은 “서울에서 목표는 늘 같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라며 용의 해를 맞아 2024시즌만큼은 기필코 마지막에 웃겠다 다짐했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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