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제가 회당 200만원을 받는데요. 10년째 동결이에요. 올리려고 해도 제작비 없다고 깎아요. 톱스타들은 계속 올리는데, 저 같은 배우들은 계속 같은 값을 받는 거죠. 아무리 인기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너무 서럽죠.”

연예계 관계자라면 익히 알만한 한 배우의 토로다. 최근 일부 톱스타의 회당 출연료가 억대를 넘어 10억원에 이르고, 제작 스태프들의 인건비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반대로 무명 배우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가 짙다”는 말처럼 K-콘텐츠가 활황을 이어가는 사이 조·단역 배우들은 오히려 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역할 분량이 적은 배우일수록 대체 가능하다는 인식이 강화되고 있다. 따라서 제작사가 가장 쉽게 비용을 확보할 수 있는 게 조·단역들의 출연료 동결, 혹은 인하다. 유명세가 없는 배우에 대한 ‘몸값 후려치기’가 심각하다.

조연급 배우 A는 15일 스포츠서울과 통화에서 “영화든 드라마든 출연료를 계속 깎으려고 한다. 출연료가 맞지 않으면 다른 배우를 쓰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아무리 비중이 적은 배역이어도 촬영기간이 수개월에 이를 수 있다. 이 기간 겹치기 출연을 하고 싶어도 (조단역은) 스케줄을 빼주지 않아서 다른 작품에 출연하기도 어렵다. 회차당 100만 원이라고 해서 20회차를 나가면 1,500만 원으로 깎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조단역 출연료’ 대략 200만원부터 최저 10만원까지

연예관계자들에 따르면 소속사가 있고 대사가 있는 배우의 출연료는 일반적으로 회당 200만원부터 시작한다. 그 사이 경쟁력이 생기면 출연료가 높아진다. 신인이 아닌 수년 이상의 구력이 있는 배우의 최저점 출연료가 200만원이라는 의미다.

이 관계자는 “경험 없는 신인의 경우에는 끼워팔기로 회당 50만원을 받기도 하고, 매니저나 배우의 능력에 따라 100만원을 받기도 한다. 이런 경우엔 감지덕지다. 구력이 쌓인 배우 중에 큰 활약상이 없으면 몸값이 동결된다”라고 말했다.

신인이 아님에도 회당 200만원 이하 단위의 배우들도 많다. 대사 경험이 많은 배우 중에는 회당 10만원을 받는 배우도 있다. 이들은 촬영 회차 혹은 출연 회차 중 하나의 방식으로 계약한다. 회차당 50만원을 받기도 하고, 회당 100만원을 받기도 하는 과정에서 계약을 잘못 맺으면 회당 출연료가 10만원까지 떨어지기도 한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배우 B는 “제가 아는 다른 배우는 회당 50만원을 받기로 했는데, 일주일 사이 촬영을 네 번이나 불렀다. 의상 비용과 기름 값을 쓰고 나면 남는 게 하나도 없다. 회차당 12만원을 조금 넘은 셈”이라며 “흔한 일은 아니지만, 아주 없는 일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최저임금도 못 받는 형편, 연예계는 강자 독식 구조

이름이 없는 배우들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이들을 보호해줄 스태프가 없는 경우 중간 단계에서 돈을 떼먹히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흔치 않지만 악질적인 캐스팅 디렉터에게 걸려 회당 10~20만원을 받는 사례도 있다는 것이다.

B는 “캐스팅 디렉터가 배우 모집을 하는 온라인 공간이 있다. 가끔 공지가 올라오는데 회차당 10만원일 때가 있다. 제작비 규모가 적은 경우도 있지만 캐스팅 디렉터가 중간에서 떼먹는 경우도 흔치않게 발생한다”며 “그런 작품은 들어가지 말자고 하는데, 작품 한 줄이 귀한 배우들은 출연하기도 한다. 이들은 작품의 배경이 되는 보조출연자가 아니다. 대사가 있는 배우를 말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결과적으로 국내 연예계의 출연료 격차는 최소 10만원에서 최대 10억원까지 ‘1만 배’가 나는 셈이다. 촬영 시간 12시간 기준으로 최저임금은 11만8320원이다. 10만원을 받는 예가 있다면 최저임금만도 못한 수당을 받는 것이다. 지방 촬영 등 각종 제반 사항을 고려하면 손해 보는 액수다.

한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는 “국내 대중문화계 배우들의 시장을 보면 ‘작은 정부의 종말’을 보는 것 같다. 강자 독식 구조다. 인기가 아무리 깡패라고 해도 너무 큰 부의 격차가 일어나 있다”며 “이 부분에 대한 제도는 아무것도 없다. 배우들의 양심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인데, 각자의 욕망이 강해 지금의 격차를 해소하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고 말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