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배우 최민식 35년, 유해진, 28년, 김고은 13년에 비하면 배우 이도현의 경력 7년은 비교적 짧게 느껴진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2017)로 데뷔한 후 넷플릭스 ‘스위트홈’(2020)과 ‘더 글로리’(2022)로 연기력을 인정받았지만, 베테랑 배우들 사이에 서기엔 아직 부족하단 인상이 있다. 게다가 첫 영화라는 점에선 의문점이 있을 법했다.

정작 베일을 벗은 장재현 감독의 영화 ‘파묘’에서 이도현의 기세는 세 명의 선배에 뒤처지지 않는다. 김고은이 맡은 무당 화림을 보조하는 봉길 역의 이도현은 차분히 뒤를 받치고, 자신이 나서야 하는 대목에선 어김없이 힘을 발휘했다. 네 사람이 함께 모인 장면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화림 곁에서 별말 없이 심드렁하게 붙어 있다가도, 굿을 할 땐 눈빛부터 변하며 강한 집중력을 선보였다. 후반부 정령의 신에 빙의됐을 때 눈을 감고 연기하는 부분에선 이도현이 얼마나 좋은 배우인지 실감케 했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신이었음에도, 긴장감을 높이는 절제된 연기가 극의 몰입을 높였다. 후반부 치킨 앞에서 눈이 돌변하는 부분에선 어린아이 같은 감성도 내비쳤다. 영락없는 MZ 무당의 면모를 이도현만의 느낌으로 완성햇다.

온몸에 문신을 새긴 외형도 놀라웠으며, 질끈 묶은 장발과 헤드셋, 한복과 실내화라는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긴 의상은 엘리트 이미지를 고수해온 이도현에겐 새로운 변신이었다. 처음 겪을 역할임에도 이도현은 무게감을 잡고 현실감을 높였다. 덕분에 색이 진한 캐릭터인 화림이 더욱 뛰어다닐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진한 캐릭터 색감으로 마구 날아다니는 역할보다 때론 중심을 잡고 이야기가 땅에 붙은 듯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역할이 어려울 때가 있다. ‘파묘’에선 화림과 상덕(최민식 분)이 진한 물감으로 붓칠하며, 영근(유해진 분)과 봉길이 연한 톤으로 배경이 됐다. 오컬트 장르인 ‘파묘’가 대중성 있는 영화로 탄생할 수 있는 배경엔 영근과 봉길이 분위기를 잘 잡아준 측면도 있다.

아울러 연기력이 떨어지는 배우가 베테랑 배우 앞에 서면 기세에서 밀리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다. 대사 전달력은 물론 같이 서 있기만 해도 기운에서 압도당한 모습이 스크린을 통해 그대로 전달되기도 한다. 그 순간 이야기의 힘이 떨어지며, 관객의 몰입도 방해한다. 영화란 주어진 배우 모두가 맡은 임무를 충실히 다했을 때 빛이 나는 매체다.

그런 점에서 가장 막내인 이도현이 선배 사이에서 조금도 뒤처지지 않고 정확하게 맡은 소임을 다할 뿐 아니라 연기력이 필요한 순간엔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한 점은 충분한 인정이 쏟아질 만하다. 아직 어린 연차임에도 베테랑 선배 사이에서 기세를 보여준 이도현의 재능은 앞으로도 무궁무진해 보인다. 장 감독도 이미 아는 모양새다.

장재현 감독은 최근 진행된 인터뷰에서 “봉길 캐릭터는 신인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쟁쟁한 배우들이 있으니까 신인 배우가 했는데 그때 이도현이 신인 중에서 톱이었다, 배우에게서 불끈불끈하던 잠재력을 봤다. 이렇게 잘될 줄 몰랐고 그때는 그냥 열심히 찍었다. 잘 성장해서 이젠 세계적인 배우가 된 것 같다”고 칭찬했다.

이도현이 봉길로 나선 ‘파묘’는 개봉 일주일 만에 400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실시간 예매율도 50만이 넘는 엄청난 기록을 세우고 있어, 앞으로 흥행이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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