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유다연 기자] “데뷔 첫 사극이라 걱정이 컸는데 아내와 함께 윤학이를 완성했죠.”
배우 이기우는 지난달 17일 종영한 MBC ‘밤에 피는 꽃’(이하 ‘밤피꽃’)으로 데뷔 20년만에 처음으로 사극에 도전했다. ‘밤피꽃’은 낮에는 수절과부로 살다가 밤에는 빈민을 돕는 검은 복면을 쓴 사대부가 며느리 여화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기우가 맡은 박윤학은 좌부승지이자 수호(이종원 분)의 형으로, 궐 안과 밖을 연결하는 가교다.
“‘밤피꽃’이 좋은 성적을 거두며 종영했는데 그 성적에 저는 한 8등 공신 정도 했던 거 같습니다. 처음 방송할 때만 해도 어색하다는 반응이나 현대극만 해야 한다는 비판을 받을까 걱정이 많았어요. 아내가 그 모습을 보고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여줬죠.”
지난 2003년 영화 ‘클래식’으로 데뷔한 이기우는 21년차 중견배우다. 그동안 큰 키 때문에 사극 출연을 꺼렸다.
“처음 작품에 들어가기 전 장태유 PD님께 ‘사극이 처음이라 걱정’이라고 털어놨어요. 제가 데뷔했을 때만 해도 저만큼 키가 큰 배우들이 흔치 않았거든요. 고민을 토로하니 장PD님께서 요즘 키 큰 배우들이 많아 이질감 없이 소화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셨어요. 첫 ‘사극 관문’을 무사히 통과했으니 두 번째 사극은 ‘밤피꽃’보다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이번에 문관을 연기했으니 다음 작품에는 무관을 맡고 싶어요.”
이기우에게 용기를 북돋아준 이는 아내다. 그의 아내는 고교시절 연극반에서 활동했다. 지난 2022년 9월 결혼한 그는 행복한 가정을 꾸린 자칭 ‘결혼전도사’다.
“JTBC ‘나의 해방일지’(2022) 때부터 대본을 2개씩 인쇄하며 아내와 나눠 읽었어요. 아내는 늘 다음 내용을 궁금해하고 자기 상상력을 대입해 조언해주곤 했죠. 연기자가 연기 간섭을 받는 건 꺼려지는 일이지만 아내에게 들을 때만큼은 귀 기울여 듣게 돼요. 어떨 때는 아내를 귀찮게 하면서까지 아내의 상상력을 들으려고 합니다.”
자고 싶은 날에도, 운전 중에도 아내가 대본을 읽어두며 이기우는 좀 더 단단한 자신만의 캐릭터를 완성할 수 있었다.
“배울 게 많은 사람이라 늘 감사해요. 제가 거실에서 대본을 읽으면 아내가 그걸 듣다가 제가 가진 현대적인 톤을 사극톤으로 바꿔줘요. 서로 역할을 바꿔가며 대본을 읽어보기도 해요. 방송을 볼 때면 아내가 우리 연습했던 자연이 반영되는지 유심히 모니터링하곤 하죠.”
다만 개인 채널에 그의 아내 모습은 볼 수 없다. 아내의 반대를 끝내 꺾지 못한 탓이다.
“저는 결혼 바이럴, 결혼 장려 커플로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아내가 그런 걸 좋아하지 않아요. 유명인의 아내로 살며 호사스러움을 즐기기보다 지켜야 할 것들을 생각하며 자중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올해 연기대상에 초청되면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려고요.”
20년을 한 우물을 파는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기우는 그저 운이 좋았다며 겸손하게 말했다.
“곽재용 감독님께서 얼마 전에 클래식 20주년 우표를 보내주셨어요. 그제야 제가 20주년을 맞이했다는 걸 느끼고 그간 연기 생활을 조금씩 더듬어 보고 있어요. 그간 함께 연기했던 동료들이 다른 길로 많이 간 걸 보니 제가 운이 좋게 이 일을 한다고 느꼈습니다. ‘클래식’이라는 좋은 작품을 만나 연기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그동안 키다리 아저씨, 금수저 연기를 했다면 ‘밤피꽃’을 통해 어떤 역을 맡아도 어색하지 않은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willow6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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