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최규리 기자] “이승에서 고생 많았어. 보고싶다. 아프지 말고, 잘 지내고 있고!”
수많은 인파가 밀집해 소음이 끊이질 않는 서울 중구 시청역 부근 한 곳, 시민들이 비통한 표정을 한 채 모여있다.
지난 3일 찾은 서울 중구 시청역 역주행 사고 현장엔 시민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수십송이의 국화꽃과 소주, 비타민 음료, 손편지들이 곳곳에 쌓여있다.
시민들은 사고로 파손된 펜스 주변에 모여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우중충한 날씨, 습한 기온에도 시민들은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한채, 참담한 표정으로 사고 현장에 오랫동안 머무르는 모습이었다.
한 시민은 “말도 안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냐. 허망하다”고 토로했다.
대부분 시민은 조용히 기도를 올리고, 눈물을 훔치며 고인들의 명복을 기렸는데, 어떤 이는 사고 장소에 있는 한 편의점에 들러 소주, 생수 등을 구매해 고인들을 추모하기도 했다.
추모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수많은 추모품 중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쓴 듯한 편지 한장이 눈길을 끌었다.
“나야”라고 운을 뗀 편지 내용에는 “너무 아팠지. 너무 늦게 왔지. 미안해”라며 “이승에서 고생 많았어. 아프지 말고, 잘 지내고 있고. 보고싶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한 시민은 한참 동안 편지 내용을 읊다가 눈시울을 붉혔다. 추모 장소에 놓인 손편지들은 대개 고인들의 직장 동료, 친구, 시민 등이 작성한 것으로 보였다.
사고 현장 구석에서 조용히 기도를 올리던 한 시민은 “볼일이 있어 지나가게 되었는데, 막상 사고 현장을 보니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고인들의 명복을 기리고 있다”며 “어떻게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사고가 날 수 있는지 너무 비통하다”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몇몇 시민들은 가해 차량 지적하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근처가 직장이라 매일 이곳을 지나다닌다는 시민은 “여기가 역주행할 수 있는 곳이 아닌데, 가속해서 인도로 돌진했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라고 황망해 했다.
가해 운전자 차 모(68) 씨는 이번 사망 사고에 대해 ‘급발진’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경찰은 운전 부주의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조사중이다. 사고 차량 블랙박스 음성 기록엔 차 씨 부부가 “어, 어”라고 외치는 목소리만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주요 참고인 조사를 시작하고 물증을 확보하며 사고 원인 규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가해 차량인 제네시스 G80의 사고기록장치(EDR) 등 분석에 들어갔다.
한편 추모 현장에 희생자를 조롱하는 듯한 끔찍한 글도 등장해 공분을 사고 있다. ‘토마토가 되어 버린…’ 등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인면수심’ 조롱 쪽지다. gyuri@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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