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파리=김동영 기자] 대한민국 보치아 ‘에이스’ 정호원(38·강원특별자치도장애인체육회)이 날았다. 결정적인 순간 빼어난 경기력을 선보이며 대표팀에 금메달을 안겼다.

정호원은 3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수드 파리 아레나1에서 열린 보치아 남자 개인전(스포츠등급 BC3) 결승에서 호주의 대니얼 미셸을 4엔드 합산 점수 5-2(3-0 1-0 0-2 1-0)로 꺾고 우승했다. 이번 패럴림픽 대한민국 3호 금메달이다.

1998년 보치아를 시작한 정호원은 2002년 부산 아시아태평양 장애인경기대회에서 우승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고, 이후 정상의 자리를 놓치지 않으며 세계 최강자로 군림했다.

패럴림픽 업적은 역대급이다. 금메달 4개와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따냈다. 처음 출전한 2008 베이징대회부터 이번 대회까지 단 한 번도 메달을 놓쳐본 적이 없다. 금메달 4개는 한국인 최다 금메달 공동 3위다.

이해곤(7개, 탁구), 김임연(5개, 사격)에 이어 정금종(4개, 역도)-김영건(4개, 탁구)과 나란히 공동 3위에 자리하고 있다.

정호원의 활약을 앞세운 한국 보치아는 1988 서울 패럴림픽부터 10회 연속 금메달 획득 금자탑을 쌓았다. 정호원의 역할이 컸음은 불문가지다.

보치아 대표팀은 8회 연속 금메달에 도전한 2016 리우 패럴림픽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우승 후보로 꼽히던 당시 세계랭킹 2위 김한수와 런던대회 금메달리스트 최혜진이 각각 남녀 개인전 결승 진출에 실패하면서다.

정호원은 홀로 개인전 결승에 올랐다. ‘반드시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결승전 전날 심한 열병을 앓기도 했다. 해열제를 맞고 결승전에 출전한 정호원은 금메달을 딴 뒤 펑펑 눈물을 쏟았다.

2020 도쿄에서도 정호원이 있었다. 당시 한국 선수단은 단 2개의 금메달에 그쳤다. 그중 하나를 정호원이 일궜다.

파리에서도 중압감은 여전했다. 정호원에 앞서 정소영(35·충남장애인보치아연맹)과 정성준(46·경기도장애인보치아연맹)이 결승에서 패했다. 금메달이 눈앞에 보였는데 결과는 은빛.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한 모양새다.

정호원만 남았다. 심한 압박감 속에 다시 한번 금메달을 한국에 안겼다. 경기 후 만난 정호원은 “내가 그동안 표현을 안 했지만, 매우 큰 부담감에 시달렸다. 매우 힘들었는데, 금메달을 따 마음이 후련하다”고 말했다.

정호원은 패럴림픽 금메달을 딸 때마다 어머니 홍현주 씨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전한다. 이날도 그랬다. “어머니는 내가 부담을 느낄까 봐 최근 일부러 연락을 안 하셨다. 파리로 떠나기 전에 마음 편하게 하고 오라고 말씀하셨는데, 금메달을 갖고 돌아가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정호원은 1986년, 어머니 홍현주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해 큰 사고를 당했다. 홍씨는 지하철역에서 매점 일을 했는데, 어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바닥에 떨어졌고 그 충격으로 뇌병변 장애인이 됐다.

불행은 계속됐다. 1995년 정호원의 가정에 큰 풍파가 일었다. 원인 모를 화마가 집을 덮쳤다. 어머니 홍씨는 몸이 아픈 정호원부터 감싸 안았다. 그 사이 형 정상원씨는 전신에 화상을 입었다. 어머니와 형의 병원비가 눈덩이처럼 불었다. 집안이 뿌리부터 흔들렸다.

정호원은 그때 보치아를 접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운동을 그만두려 했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보치아는 정호원과 그의 가족에게 희망 그 자체였다. 매일 꿈을 담아 공을 굴렸다. 그렇게 한국 장애인 스포츠의 영웅이 만들어졌다. ‘GOAT(Greatest of all time)’가 여기 있다. raining99@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