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파리=김동영 기자] 대한민국 탁구 대표팀 김기태(26·서울특별시청)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패림림픽 한풀이다. 파이팅이 넘쳤다. 그러나 탁구장 밖에서는 조용하다. 모든 출발은 아버지 김종섭 씨다.
평소 말수가 없고 매사에 소극적이던 김기태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 김종섭 씨의 손을 잡고 탁구장에 갔다. 김종섭 씨가 탁구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아들이 스포츠를 통해 외향적으로 바뀌길 바랐다.
탁구채를 잡은 김기태는 눈빛이 달라졌다. 금방 운동의 매력에 빠졌다. 또래 친구들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높은 수준의 경기력을 펼치기 시작했다.
김기태는 “아버지가 좋아하셔서 탁구장에 따라갔다. 나도 치게 됐다. 하다 보니까 주변에서 내게 ‘재능이 있다’고 했다. 그 계기로 탁구 선수의 길을 걷게 됐다”고 설명했다.
2011년 병원에서 지적 장애 진단을 받은 뒤에도 김기태는 운동을 이어갔다. 2016 리우 패럴림픽을 앞두고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처음 출전한 리우 패럴림픽에서 4위를 차지했다.
동메달 결정전에서 아쉽게 패해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다. 이 경험은 김기태의 승리욕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2020 도쿄대회에서는 노메달에 그쳤지만, 김기태는 주저앉지 않았다.
2022 세계장애인선수권대회 때 3관왕을 차지하는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로 우뚝 섰다. 세계랭킹 3위까지 올라간 김기태는 3번째 출전한 패럴림픽 무대에서 마침내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6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사우스 파리 아레나4에서 열린 2024 파리 패럴림픽 탁구 남자단식(스포츠등급 MS11) 결승에서 전보옌(대만)을 세트 스코어 3-1(3-11 15-13 11-7 11-9)로 누르고 금메달을 따냈다.
앞서 준결승에서 세계랭킹 1위 새뮤얼 본 아이넴(호주)을 잡으며 기세를 올렸다. 결승에서도 승리하며 ‘최고’가 됐다. 마침내 패럴림픽 챔피언이 됐다.
1세트에선 결승전이 주는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해 큰 점수 차로 끌려갔다. 몸이 풀린 2세트부터 무서운 ‘공격 탁구’로 전보옌을 몰아붙이며 역전승했다. 김기태는 금메달을 확정한 뒤 그대로 드러누워 기쁨을 표현하기도 했다.
경기 후 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김기태는 “처음엔 굉장히 떨려서 내 플레이가 안 나왔다”며 “1세트가 끝난 뒤 마음을 비웠다. 나보다 잘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배운다는 생각으로 했고, 이기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하지 않아서 오히려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리우대회 때 엄청나게 속상했고, 도쿄대회 때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떨어져서 착잡했다. 그래서 이번 패럴림픽이 간절했다”라고도 했다.
김기태는 인터뷰 내내 작은 목소리로 답변했다. 부끄러운 듯 뒤로 물러서기도 했다. 이날 시상식에서도 비슷했다. 김기태는 쑥스러운 듯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별다른 세리머니 없이 시상대에서 내려왔다.
경기 중 큰 소리로 ‘파이팅’을 외치고 승리 후 포효하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김정중 대표팀 코치는 “평소에 ‘파이팅’ 소리도 안 내는 조용하고, 소극적인 선수다. 오늘은 경기에 완전히 몰입하더라. 아마 자기가 파이팅 냈는지도 모를 거다”고 말했다.
작은 목소리로 인터뷰를 이어가던 김기태는 ‘아버지가 탁구장에 데리고 가지 않았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나’라는 질문에 “평범한 학생일 것이다. 아버지께 감사하다”고 밝혔다.
이어 ‘아버지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나’라는 말에 “탁구의 길을 걷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한국에 돌아가면 부모님께 메달을 걸어드리겠다”며 미소를 지었다. raining99@sportsseoul.com
기사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