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파리=김동영 기자] 2엔드부터 임광택 보치아 대표팀 감독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럴 만도 했다. 1엔드에 홍콩에 3점을 내주며 분위기가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2엔드에 정호원(38·강원특별자치도장애인체육회)의 정교한 샷이 살아나면서 3점을 가져오자 임 감독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만큼 막상막하의 경기가 이어졌다.

정호원과 강선희(47·한전KPS)가 짝을 이룬 보치아 혼성 페어(스포츠등급 BC3)는 이번 2024 파리 패럴림픽 대표팀이 유력 금메달 후보로 꼽은 종목이었다. 정호원이 개인전 금메달, 강선희가 개인전 동메달을 따내면서 기대감은 한껏 커졌다. 그러나 이번 대회 마지막 경기, 마지막 엔드(4)에서 실수가 나오면서 마지막으로 고개를 떨궜다.

정호원-강선희는 6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사우스 파리 아레나1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홍콩 호웬케이-쩌탁와에 3-5로 졌다. 아쉬운 은메달.

이로써 한국 보치아 대표팀은 금메달 1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 등 총 5개 메달로 이번 대회를 마무리했다. 보치아가 처음 패럴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88년 서울 대회 때부터 이어온 금메달 행진을 정호원의 활약 속에 ‘10연속’로 늘린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돌이 되기 전 당한 사고로 뇌병변 장애가 생긴 정호원은 중학교 1학년 때 보치아를 시작했다. 보치아는 뇌성마비 장애인을 위해 고안된 스포츠로, 패럴림픽만 있고 올림픽에는 없다. 정호원은 “겉보기에는 단순한 경기 같지만 실제로는 생각도 많이 해야 하고 힘 조절과 집중력 등 고도의 세밀한 조절이 필요한 운동이어서 빠져들었다”고 했다.

정호원은 2008 베이징대회부터 꾸준하게 패럴림픽에 참가해 메달을 따왔다. 개인전 금메달에 이어 이날 혼성 페어에서 은메달을 추가하면서 패럴림픽 통산 메달은 여덟 개(금 4개, 은 3개, 동 1개)가 됐다. 가히 한국 보치아의 최고 에이스다.

정호원은 경기 뒤 공동취재구역에서 취재진을 만나 “마지막 던진 공 실수가 너무 아쉽다. 대회 전에 누나(강선희)에게 금메달을 따게 해주겠다고 했는데 안 됐다”며 “누나가 꼭 다음 대회(2028 LA 패럴림픽)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땄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에 있는 어머니와 형에게는 대회 기간 내내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어머니께 전화해서 건강하게 돌아가겠다고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사회복지사를 준비하던 중 현장 실습을 나갔다가 보치아를 처음 접했던 강선희는 첫 패럴림픽 출전에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수확했다. 보치아를 하면서 “자존감과 자신감이 높아지며 ‘밝은 척’이 아닌 진짜 마음까지 밝은 성격으로 변했다”고 말하던 그였다.

강선희는 “처음 참가한 패럴림픽에서 개인전 동메달이라는 너무 큰 성과를 가져가서 너무 기쁜 마음인데 정호원이 2관왕이 못 된 게 많이 아쉽다. 나 자신만 보면 만점인 대회”라고 했다.

이어 “정호원이 개인전서 금메달을 따주면서 10연패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그나마 편하게 페어 경기를 했다. 정호원이 아니면 (페어)은메달도 못 땄다”고 했다.

한국의 가족들을 떠올리면서는 “경기보조선수에게 들으니 가족들이 노심초사하면서 내 경기를 지켜봤다고 한다. 제가 부담스러울까 봐서 직접 연락도 못 하고 있던 것인데 가족들한테도 감사하다”고 했다.

이날을 끝으로 보치아 패럴림픽 경기는 모두 마감됐다. 홍콩이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를 따내면서 보치아 신흥 강국으로 떠올랐다. 임광택 감독은 “홍콩이 지원을 많이 받고 이번 대회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낸 것 같다”고 말했다. raining99@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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