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천안·계룡=황혜정 기자] “너희는 혼자가 아니야.”

최연소·최초 타이틀이 언제나 따라붙던 천재 야구 소녀. 그러나 언제나 ‘혼자’였다. 같이 야구를 하는 또래 여학생 하나 없이 남학생들 사이에서 버텨내고 견뎌낸 천재 소녀는 이제 훌쩍 성장해 후배들에 야구용품을 기증하는 멋진 어른이 됐다. ‘여자야구 에이스’ 김라경(24·서울대) 얘기다.

김라경이 지난 7일 야구하는 유소년·유소녀를 찾아 야구용품을 기증했다. 규모만 약 700만원 상당이다.

젊은 선수가 이제 막 자라나는 꿈나무 후배들을 위해 통 큰 결심을 했다. 김라경은 “야구는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운동이라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다”라면서 “작은 선물이지만, 누군가가 이 험난한 여정을 함께 하고 있다는 걸,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라고 기부 계기를 밝혔다.

이에 따라, 김라경은 국내 유일 여학생을 위한 야구단인 ‘천안시주니어여자야구단’과 자신이 어린시절 뛰었던 ‘계룡시리틀야구단·U-15 야구단’을 각각 찾아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러닝화를 총 39켤레 기증했다. 미리 야구단 소속 부원들의 치수를 파악한 뒤 맞춤형 신발을 선물했다.

먼저 이날 오전 일찍 ‘천안주니어’를 찾은 김라경은 야구를 하는 여학생들을 바라보며 대견한 미소를 지었다. 용품 기증에 앞서 이들의 훈련 과정을 모두 지켜보며, 천안주니어 코치진의 요청에 직접 배팅볼 200구를 한가운데로 던져 아낌없이 안타를 맞아주는 등 열정적으로 동생들의 훈련을 돕기도 했다.

동행한 김라경의 어머니는 “라경이는 항상 혼자였는데, 이제는 많은 수는 아니지만 여학생들이 또래들과 함께 야구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 참 다행”이라며 웃었다.

천안시주니어 소속 오채은(중2)은 “라경 언니는 내가 야구를 시작할 때부터 언제나 롤모델”이었다며 “오늘 배팅볼을 던져주셨는데, 너무 감사하고 라경 언니 공을 타격해 볼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선물해주신 러닝화도 매일 신고 다닐 것”이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신이솔(고2)도 “여자야구를 검색하면 가장 먼저, 많이 뜨는 언니가 아닌가. 라경 언니는 참 대단하고 멋진 언니다. 언니가 선물해주신 러닝화를 보며 나도 언니처럼 멋진 야구 선수를 꿈꾸겠다.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천안주니어의 오전 훈련을 모두 지켜본 뒤 김라경은 차로 1시간을 달려 이번엔 충남 계룡시로 향했다. 바로 자신이 뛰었던 ‘계룡시리틀야구단’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계룡리틀’의 어린 소녀가 자타공인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스타’로 성장해 금의환향했다. 계룡시야구소프트볼협회 임원진뿐만 아니라 계룡시 체육회 정준영 회장까지 김라경을 맞이하기 위해 시간을 냈다. 격한 환대를 받은 김라경은 계룡시리틀과 U-15 야구단에게 후배들에게 “다치지 말고 즐겁게 야구했으면 좋겠다. 언제나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더 많이 해주고 싶었는데, 아직 내 능력이 안 된다”며 아쉬워 한 김라경에게 계룡시리틀야구단 학부모들은 입을 모아 “계룡 출신 선배가 이렇게 자신의 고향을 기억하고 후배들을 찾아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운데, 야구용품까지 기증해줬다. 이렇게 멋진 선배가 어딨나”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뜻깊은 기증식을 마친 김라경은 “해맑게 야구하는 후배들의 모습을 보며 내가 그저 야구가 좋아 근심없이 야구를 즐기던 시절이 떠올랐다”며 “앞으로 후배들이 꿈과 웃음을 잃지 않고 오래도록 야구하길 바란다. 후배들을 더 많이 응원하기 위해 나 역시 더 좋은 선배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너희는 혼자가 아니야!”…김라경이 야구용품을 기증하며 후배들에 전한 메시지다. 이제 후배들은 김라경이 선물한 러닝화를 신으며 발을 내디딜 때마다, 자신을 응원해주는 선배를 생각하며 땀방울을 흘릴 터다. et1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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