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딱 들었을 때 기존 공식에 맞는 한국 상업영화는 아니에요. 제작하면서 저에게 쉽지 않은 과정들이 있었죠. 하면서 중간에는 미쳤나 싶기도 했어요.”
영화 ‘탐정:리턴즈’(2018)에 관객 309만명이 들었다. tvN 드라마 ‘살인자의 쇼핑목록’(2022)도 4%대 시청률로 흥행했다. 충무로에 몇 안 되는 흥행 스코어를 가진 여성 감독이기에 자신감도 있었다. 성공 방정식대로 가지 않았다. 모험을 감행했다.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다. ‘대도시의 사랑법’을 택했다. 생각보다 캐스팅에 난항을 겪었다. ‘파묘’로 천만 배우가 된 김고은을 앉혀놨지만, ‘파친코’ 노상현이 나타나기까지 꼬박 1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이언희 감독은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탐정’ 때보다 할 수 있는 걸 부지런하게 했다. 결과물이 없으면 아무리 열심히 했다고 의미가 없다”라며 “이 영화는 많은 분들이 보시고 느낄 감정 포인트가 많은 영화”라고 소개했다.
김고은이 맡은 재희는 박상영 작가 원작 소설보다 이야기가 풍성해졌다. 소설이 세계 3대 문학상인 부커상과 더블린 문학상에 노미네이트 된 뒤 프랑스 메디치상 1차 후보에까지 오르자, 이 감독 부담은 더 커졌다.
이 감독은 “재희는 깊숙하게 들어가면 좋은 얘기를 할 수 있을 거 같았다”며 “저렇게 살아봤으면 하는 판타지 같은 인물”이라고 말했다. 영화는 대학교 1학년부터 13년간 이야기를 좇아간다. 재희는 자신의 소신을 거두지 않고,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다. 편견에도 맞선다. 흥수(노상현 분)가 가진 동성애란 성정체성을 인정하고 보듬는다.
두 인물 전사(前事)에 차이를 둔 것도 이런 점 때문이었다. 이 감독은 “흥수는 엄마의 존재가 영화에서도 보인다. 재희도 그렇게 다룰까 해서 써보니까 설명할수록 구구절절 촌스러워졌다. 이유를 대는 듯한 느낌이었다”며 “재희가 저렇게 행동하는 건 이런 환경을 가지고 있어서라는 것으로 연결될까 봐 조심스러웠다”고 말했다.
캐릭터 설명 없이도 재희를 힘 있게 묘사할 수 있었던 건 김고은이 가진 힘이었다. 이 감독은 “한번 작업하고 싶은 마음으로 만나보니 부러웠다”며 “너무 아름답고 젊고 재능 있고 성격도 그렇고 사주도 좋다”고 웃어 보였다. ‘파묘’ 영향일까. 이 감독은 “상현 씨가 사주를 좋아한다”며 “검색하면 배우들 사주가 인터넷에 나와 있다. 고은이는 배우를 해도 성공하고 안 해도 성공하는 사주였다”고 말했다.
영화에도 이런 장면이 있다. 흥수 엄마가 재희와 동거하는 집에 찾아온다. 식겁한 흥수가 집으로 놀라서 들어가자, 재희는 “어머니, 저는 영부인 사주라 옆에 있는 사람이 잘 된대요”라고 콧소리를 섞으며 능청스레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마음 졸이며 보던 관객들이 ‘빵’하고 터지는 장면이다.
둘의 서사는 2010년대를 살아간 MZ세대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관건은 동성애 수위 조절이었다. 애정을 나누는 장면을 에둘러 표현할 수도 없었다.
“배우에게도 흥수 연기를 하면서 겁내거나 비겁해 보여도 안 된다고 했어요. 그렇다고 과하게 보여주려는 것 없이 표현하자고 했고요. 배우들도 쉬운 작업이 아니었어요. 어떤 상황이든 같이 얘기했죠. 편집에서 이렇게 보이는 게 맞나 빼보기도 했고요. 순리대로 보여줘야 하는 게 아닐지 생각했어요. 우리가 어떤 잣대를 갖고 보여주지 않아야 한다고 했죠.”
이 감독은 김고은, 노상현 두 배우가 없었다면 영화를 만들지 못했을 거라며 재차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 감독은 “제가 배우들을 선택한 게 아니라 선택한 것”이라며 “미팅 자리에서 흥수 맡아달라고 화장실 앞에까지 쫓아가서 ‘해주실 거죠’하고 그랬었다”고 웃어 보였다. socoo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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