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실험적인 시도다. 네 명의 감독이 하나의 책을 기반으로 네 개의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책은 1927년 연재된 어니스트 해밍웨이의 ‘살인자들’이다. 네 단편을 앤솔로지 형태로 구성한 영화의 제목은 ‘더 킬러스’다. 김종관-노덕-장항준-이명세 감독이 뭉쳤다.
소설은 두 명의 남성이 스웨덴의 권투선수 안드레슨을 잡기 위해 미국 시카고의 한 음식점을 찾는 것부터 출발한다. 두 남성은 안드레슨을 잡기 위해 음식점의 주인과 직원을 협박한다. 두 남성이 빠져나간 뒤 음식점 주인 조지는 직원 닉에게 안드레슨에게 소식을 전해주라 한다. 닉의 정보를 받은 안드레슨은 “그래도 난 집 밖을 나갈 계획이 없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죽을 것을 알고도 기다리는 안드레슨이 끔찍하다며 닉이 도시를 떠난다.
여기까지가 소설의 핵심 줄거리다. 의미나 이야기를 자세히 담지 않은 채 일부 장면만 보여주고, 나머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어니스트 해밍웨이의 정수가 담긴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오는 23일 개봉하는 ‘더 킬러스’는 이 소설을 확장한 네 편을 담고 있다. 심은경이 네 편에 모두 출연한다. ‘변신’의 김종관 감독은 뱀파이어, ‘업자들’의 노덕 감독은 살인청부,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의 장항준 감독은 형사, ‘무성영화’ 이명세 감독은 독립운동으로 확장했다.
네 편 모두 여러 이야기 끝에 한 공간에서 긴장감이 감도는 이야기를 펼쳐냈다. ‘변신’은 조직으로부터 배신당한 남자(연우진 분)가 한 주점의 주인(심은경 분)이 준 음료를 먹고 변신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다. 마치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가 이어지다 갑작스럽게 사건이 벌어지는데 예측을 깬다. 흑백과 컬러가 오가는 과정에서 색감이 매력적이다.
‘업자들’은 살인청부로 바뀌었다. 한 여인으로부터 음악교수를 죽여달라고 3억원의 돈을 받은 남성(김종수 분)은 다른 업자에게 1억5000만원에 일을 맡긴다. 그 인물은 3000만원에 일을 넘긴다. 급기야 300만원까지 떨어지고, 마지막엔 10원까지 내려간다. 그 과정에서 죽여야 하는 대상이 뒤죽박죽 섞인다. 매우 진지한 인물들의 얼굴 속에서 허를 찌르는 웃음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웃길 줄 아는 노덕 감독의 장기가 가득하다. 이명세 감독의 아들로 알려진 이반석은 배우로서 역량이 출중하다. 독창적인 캐릭터를 만들면서도, 그 안에 보편적인 인간의 행동이 담겨 있다.
장항준 감독의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는 원작을 가장 충실히 담은 작품이다. 얼굴을 보면 모두 죽여버리는 살인자를 찾기 위해 무려 네 명의 형사가 한 음식점에서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다. 누가 진짜 살인자인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 뜻밖의 싸움이 눈을 사로잡는다. 박상면, 이준혁, 장현성이 중심을 잡고 김민과 오연아가 강력한 에너지를 분춣했다. 장항준 감독의 연출력을 만끽할 수 있다.
다른 영화가 상업성이 있는 데 반해 ‘무성영화’는 예술성이 짙다. 이해하기 너무 어렵다. 한 음식점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조직원들과 음식점 주인 간의 대치를 담았다. 한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한다. 심은경과 고창석, 김금순을 활용해 이야기를 끌고 간다. 어렵게 흘러가는 이야기 안에서 독립운동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사실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유일하게 대중성이 결여됐다.
원작을 좋아하거나, 새로운 구조의 영화를 기다렸던 팬들에겐 반길 작품이다. 세 편은 충분히 대중적이다. 다양한 얼굴을 활용하는 심은경의 연기력도 볼 만한 요소다. 점점 약화되는 독립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넣기 위해 기획된 시도다. 저예산 독립영화임에도 의미 뿐 아니라 재미도 가득하다. intellybeast@sportssoe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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