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울산=김용일 기자] “지도자로 첫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도장깨기하는 기분이었다. 모두가 기대보다 우려가 많았다.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이 자리에 왔다. 나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공존하는 걸 안다. 이번에도 도장깨기 한다는 생각으로 자신있게, 책임감있게 최선을 다하겠다.”

지난 8월 울산HD 취임 기자회견에서 또 한 번 ‘도장깨기’를 다짐한 김판곤 감독은 뜻대로 지도자 커리어의 새 이정표를 다시 썼다.

울산은 1일 울산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4’ 36라운드 강원FC와 홈경기에서 루빅손, 주민규의 연속포가 터지며 2-1 신승했다.

승점 68(20승8무8패)을 기록한 울산은 시도민구단 사상 첫 우승을 겨냥한 2위 강원(승점 61)의 추격을 따돌리면서 잔여 2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조기 우승을 확정했다.

지난 2022년 홍명보 현 A대표팀 사령탑 체제에서 17년 만에 리그 우승에 성공한 울산은 지난해에도 리그 2경기를 남겨두고 조기 우승을 달성한 적이 있다.

올 시즌 울산은 홍 감독이 지난 여름 A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돼 팀을 떠나면서 잠시 혼선을 겪었다. 홍 감독이 떠나고 감독 대행 체제로 리그 3경기를 치렀는데 1승2패로 주춤했다.

그러나 김 감독 부임 이후 이르게 안정을 찾았다. 그는 잔류한 기존 코치진을 신뢰하면서 ‘공격 지향적 수비’ 색채를 내세웠다. 김 감독 체제에서 울산은 리그 11경기를 치러 8승2무1패의 호성적을 냈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 수비진의 노쇠화 등이 맞물리며 기복이 따랐다. 특히 최근 개막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에서 충격의 3전 전패 수모를 당하면서 비판 여론에 형성됐다. 지난달 23일 울산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비셀 고베(일본)전 0-2 완패 뒤엔 “할 말이 없다. 부끄럽다. 16강에서 탈락한다고 해도 할 말 없다. 상대를 대하는 태도, 존중심, 홈 팬에 대한 존중, 팀 메이트에 대한 존중, 스스로에 대한 존중 등 아시아에서 경쟁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부터 부족하다”고 말했다.

자칫 리그 우승 경쟁에도 악영향을 끼칠 상황에서 김 감독은 이례적으로 강한 어조로 말했다. 직후 선수단은 이청용, 김영권 등 베테랑을 중심으로 다시 똘똘 뭉쳤다. 마침내 우승으로 가는 분수령으로 꼽힌 지난달 27일 포항 스틸러스와 동해안 더비 원정에서 2-0 완승했다. 강원전을 앞두고 3연패의 디딤돌을 놓은 것이다. 게다가 3개월 넘게 침묵하던 주민규까지 부활포를 터뜨렸고 강원전에서도 결승골의 주인공이 됐다.

대위기를 극복한 데엔 김 감독의 믿음의 축구가 한몫했다. 그는 부임 이후 로테이션을 꾸준히 가동하며 장시영, 마테우스 등 기존에 기회를 많이 얻지 못한 자원을 중용했다. 슬럼프를 겪은 주민규도 지속해서 신뢰했고 깨어나게 했다. ACLE를 포함해 주요 경기에서 조직력이 흔들리며 로테이션 정책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나왔지만 선수끼리 더욱더 희생하고 똘똘 뭉치게 하는 발판이 됐다. 막판 원 팀이 돼 위기를 극복하는 데 밀알이었다

김 감독은 울산 부임 전 홍콩, 말레이시아 대표팀을 이끌면서 두드러진 성적을 냈다. 다만 K리그처럼 아시아 최상위 리그의 클럽 사령탑은 처음이다. 대표팀과 운영 방식이 다소 다른 클럽, 그것도 우승에 도전해야 하는 팀을 이끄는 건 그에게 또다른 도전이었다. 그러나 스스로 비주류라고 외치면서도 지도자로 도전해 도장깨기에 성공해온 것에 자부심을 보였다. 울산을 통해 국내 축구계에도 자기 지도력을 명확하게 입증하고픈 의욕을 보였다.

마침내 어수선했던 울산을 이끌고 타이틀 방어에 성공, 지도자 커리어 첫 K리그 챔피언 사령탑이 됐다. 특히 그는 선수 시절인 1992~1996년 울산 유니폼을 입고 뛴 적이 있다. 28년 만에 호랑이 군단의 지도자로 돌아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됐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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