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울산=김용일 기자] 슬럼프를 딛고 울산HD의 ‘우승골’을 터뜨린 스트라이커 주민규(34)는 어느 때보다 마음의 짐을 털어낸 듯 미소를 보였다.

주민규는 1일 울산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4’ 36라운드 강원FC와 홈경기에 초전방 공격수로 선발 출격, 후반 8분 쐐기포를 터뜨리며 팀이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청용이 오른쪽 측면을 파고들어 낮게 깔아찬 공을 정확한 타이밍에 쇄도해 밀어넣었다.

주민규의 결승골로 이긴 울산은 승점 68(20승8무8패)을 기록, 2위 강원(승점 61)의 추격을 따돌리면서 잔여 2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조기 우승을 확정했다. 더불어 K리그 역대 세 번째(성남·전북·울산)로 3연패를 달성한 팀이 됐다.

K리그에서 두 번(2021·2023)이나 득점왕을 차지한 주민규는 올해 태극마크까지 다는 등 ‘만추가경’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지난 7월13일 FC서울전에서 리그 8호 골을 넣은 뒤 3개월 넘게 침묵, 장기 슬럼프에 빠졌다. 자연스럽게 대표팀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희미해졌다.

하지만 지난달 27일 포항 스틸러스와 35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부활포를 날렸다. 득점 뿐 아니라 특유의 등지는 플레이 등 연계 능력까지 살아나며 정상 궤도에 근접했음을 알렸다. 스스로 동력으로 꼽은 건 가족, 그중 아내다. 주민규의 아내는 임신한 상태다. 그럼에도 주민규가 혹여 스트레스받지 않을까 우려하며 커다란 배려를 했단다. 정신적 지주 구실도 했다.

주민규는 “아내는 내게 ‘가장 좋아하는 축구, 사랑하는 축구를 하라. 골 넣으려고 하지 말고 축구하는 게 먼저’라고 말하더라. 정말 사랑하는 축구를 즐기자고 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당시 주민규는 기자회견장을 떠나면서 아내 생각에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쏟은 것으로 알려졌다. 더 독하게 마음을 품은 그는 강원전에서 2경기 연속골이자 팀의 우승을 확정짓는 결승골로 포효했다. 리그 10호 골을 터뜨리며 K리그1에서 네 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했다.

주민규는 “(골 못 넣는 기간) 굉장히 힘들었다. 이렇게 긴 침묵할 수 있나.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이었다”며 “버틸 수 있었던 건 감독, 동료가 함께해줘서다. 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감사하다. 축구가 팀스포츠라는 것을 느낀 3개월이었다”고 말했다.

기쁨이 배가 된 건 5년 전 악몽의 땅으로 남은 울산종합운동장에서 챔피언을 확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울산에서 한 시즌을 보낸 그는 같은 장소에서 포항 스틸러스와 최종전을 치렀다. 비기기만 해도 자력 우승이 가능했는데 1-4 대패하면서 전북 현대에 역전 우승을 허용했다. 주민규는 이후 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가 지난해 울산으로 복귀해 우승 꿈을 이뤘다.

그는 “2019년 (울산에서) 뛸 때 이곳에서 우승 못하면서 아픔이 겪었다. 사실 두려웠다. 트라우마가 아직 있더라”며 “징크스를 깨면서 우승을 확정지어 굉장히 기쁘다”고 했다. 또 5년 전에도 함께 뛴 수비수 이명재 얘기를 언급했다. 주민규는 “명재가 경기 앞두고 그때 얘기를 하더라. 그래서 ‘재수없는 소리하지 말라’고 짜증을 냈다”고 웃더니 “명재는 명재 스타일대로 웃으면서 견디는데 난 진지한 편이다. ‘또 설마’라고 생각했는데 나만 그랬나보다. 다른 선수 모두 자신감이 있었다. 오늘 우승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주민규는 이날 다시 아내 얘기가 나왔는데 “그동안 집에 의기소침하게 들어갔는데 오늘은 어깨 펴고 당당하게 들어갈 것 같다”며 “축구 선수 아내로 사는 게 쉽지 않다. 좋은 선수로 나아가게 해줘서 감사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처음에 왔을 때 울산과 현재 울산을 비교해달라는 질문에 “내 생각엔 과거 중요한 경기마다 ‘지면 어쩌나’ 걱정하고 긴장했다”며 “지금은 우승을 맛보면서 어떻게 시즌을 끌고가야 하는지 안다. 이런게 우승DNA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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