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다크나이트’라고도 불리는 이 인물은 만화 혹은 영화 속에서 ‘영웅’으로 불린다. 경찰이 해결하지 못 하는 미스테리한 사건과 강력범죄 등을 해결하고, 공권력이 미처 닿지 않는 약자들을 돕고 보호한다.

슈퍼맨, 원더우먼처럼 초능력이 없는,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간이면서도 한계까지 단련한 신체와 격투실력으로 악당들을 퇴치하는 것도 매력적이다(물론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기발한 보호장치와 무기들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독자들은, 그리고 만화 속 고담시의 시민들은 배트맨에게 박수를 보내고, 그의 활동을 응원하는 한편 무능한 경찰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다. 만화 속에서, 그리고 영화 속에서 배트맨은 언제까지나 ‘영웅’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이들을 부르는 다른 단어가 있다. ‘자경단’.

자경단이란 공권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범죄나 재난으로부터 자기 가족을, 한 마을을, 한 지역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조직한 경비 단체를 의미한다. 현대 사회에서, 특히 공권력에 의한 치안 확보가 제대로 된 국가에서는 자경단이 사실 큰 의미가 없다.

우리나라 자율방범대처럼 늦은 밤 주민들의 보다 안전한 귀갓길을 위해 순찰을 한다거나, 범죄 신고, 청소년 선도 정도의 활동이 전부다. 범죄를 일으킨 사람과 몸싸움하며 체포까지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배트맨이 현실에 나타난다면, 여러 단서를 분석해 스스로 범죄자를 찾는 것까지야 어떻게 용인될 수 있다고 해도 직접 범인을 두들겨 패 기절시킨 다음 경찰서에 데려다 놓는 행위는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만약 배트맨이 어느 날 나쁜 마음을 먹었다고 쳐보자. 지금껏 잡아들인 악당들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 당한 사람이 너무 약했던 것이고, 저런 악당 하나 못 잡는 경찰들이 너무 무능하다고 생각하며 좌절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세상을 바로잡겠다며 자기 능력을 이용해 이제는 경찰들을 공격하고, 정부 고위직을 납치해 협박한다면? 적어도 만화나 영화에서 보여주는 능력이 있다면, 세상에 배트맨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슈퍼맨, 원더우먼이 와도 배트맨은 이들의 약점을 쥐고 있기 때문에 못 막는다.

현실에서도 자경단의 규모가 커질 경우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다. 실제로 미국은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사조직이 이끄는 민병대 때문에 현재에도 굵직한 사건이 터지곤 한다. 그래서 법 위에, 즉 공권력 위에 서는 자경단은 현실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

호신술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필자는 꽤나 강성 타입이다. 내 안전을 위해 때로는 강력하고 위험한 기술도 일단 사용해야 한다는 쪽이기 때문이다.

내가 칼에 찔리지 않는 것이, 성폭행을 당하지 않는 것이, 집단폭행을 당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니 이를 일단 성공시킨 이후, 나중에 일어날지도 모를 ‘오히려 가해자로 몰렸다’, ‘되려 치료비와 합의금을 지급했다’ 등의 문제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필자가 ‘강해졌으니 그 힘을 마음껏 사용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신을 지키는 것에만 단련하고 익힌 것을 사용해야 한다. 타인을 괴롭히거나 응징하는 것에 그것을 사용한다면, 그 사람이 아무리 큰 잘못을 했다고 해도, 나 자신이 선을 넘은 것이며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최근 미국 유튜버 조니 소말리 사건이 SNS에서 뜨겁다. 여러 나라를 돌면서 민폐짓을 하며 악명을 얻은 이 유튜버는 한국에 와서도 각종 민폐짓을 벌이다 평화의 소녀상에 몹쓸 짓을 하고 난 이후 국민의 대대적인 공분을 샀다.

그런데 소말리가 실시간 방송을 하는 사이 그를 알아본 한 사람이 소말리를 때린 후 사건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댓글 등으로 소말리를 때린 사람에게 “속 시원하다”고 칭찬을 하고, 좀 더 일찍 저 이방인을 제재하지 못 한 경찰력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그러자 이러한 행동이 사람들의 관심과 조회수를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 몇몇 유튜버들이 너도나도 라이브방송을 켜고 소말리를 찾아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들의 행동에 ‘경찰이 못 한 걸 당신들이 해낸다’며 부추겼고, 결국 소말리는 오히려 한국 경찰에게 보호 요청을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됐다. 이런 상황인데도 유튜버들의 소말리 찾기는 이어지는 중이다.

스스로는 배트맨 같은 영웅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조회수를 끌어올려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인 ‘폭행범’일 뿐이다. 정의감 때문이라고 변명을 할 거라면 법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그저 자신의 힘을 믿고, 약자를 괴롭히는 가해자. 그들에게 묻고 싶다.

만약 소말리의 키가 170㎝정도가 아니라 2m의 거구였고 근육질의 힘이 정말 센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당당히 뛰어가서 주먹을 날릴 수 있었겠냐고. 적어도 배트맨이 잡던 빌런들은 배트맨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능력, 혹은 뒷배경이 있던 인물들이었다.

노경열 JKD KOREA 정무절권도 대한민국 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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