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경쟁은 인간 사회에 불가피하다. 인류를 발전시킨 건 서열로 구분 짓기를 하며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 온 덕분이다. 약육강식이라는 피할 수 없는 자연적 숙명도 있다.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도 비슷한 심리다. 야구, 축구, 농구, 유도 등 숱한 운동엔 힘과 힘이 맞닿으며 승리와 패배를 나눈다. 환희와 좌절로 희비가 엇갈리는 잔인함 속 피어나는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괜찮아, 앨리스’(감독 양지혜)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보편적 정서를 거스르는 영화다. 입시에 맞춰 서울 강남구 대치동으로 모여 대입을 준비하는 이들과 다르게 인천시 강화군에 있는 ‘꿈틀리인생학교’를 찾는다.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기숙사 생활을 한다. 함께 모여 음악도 만들고, 모내기도 한다. 스토리텔링 시간을 통해 자신이 가진 생각을 꺼내 보이기도 한다. 1년이 지난 뒤에는 공교육으로, 대안학교로, 혹은 학교를 관두기도 한다.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다큐멘터리 메시지가 누군가에겐 한가한 소리로 들릴 수 있다. 2025 교육과정 개편으로 인해 고교학점제, 수능 제도 개편 등 준비할 것이 많은 학생에게 황금 같은 1년의 세월을 공부가 아닌 다른 곳에 투자하라 한다. 허비라는 것으로밖에 안 들릴 수 있다. 이것이 진정 ‘행복’이란 인간이 추구하는 본질적 가치와 얼마나 간극이 있는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학교를 오는 학생들은 경쟁사회 속 마음과 몸이 다친 학생들이다. 학교에서 수두룩하게 표창장을 타며 전교권 성적을 놓치지 않던 한 학생이 있다. 어느 날 수학 문제를 풀다 몸과 마음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쏟아지는 눈물에 주저앉았고, 부모는 이 학교를 보내기로 결심했다. 1년을 학교 공동체에서 수학하며 자신이 다시 뛸 수 있는 성장 근육을 만드는 데 이르렀다.

핵심은 여기에 있다. 경쟁사회 속 이탈한 이를 보듬을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이 필요하다. 덴마크는 세계 행복지수 1위다. 재원 70%를 보조받는 이런 학교가 즐비한 덴마크와 달리 지원 한 푼 없이 한국에 이런 학교를 설립한 건 교육과정에 간섭하는 관(교육부·교육청) 간섭을 배제하기 위해서였다. 설립자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느낀 사회적 부채 의식도 한몫했다. 경쟁으로 치달으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학생이 많은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든 어른으로서 조그마한 해결책이라도 내놔야 하겠단 생각에서다.

한국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 역시 여기에 있다. 학교 형태가 다양해야 한다. 대입을 목표로 외국대학 진학을 목표로 엘리트 교육을 지향하는 특목고, 자사고 존재도 필요하다. 다양한 대안학교를 통해 대학이 인생이 전부가 되지 않게 유도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 영화가 주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교육 3주체 학생-학부모-선생님이 일치단결한단 점이다. 학부모는 자식에게 강요했던 과거에 대해 속죄하고 사과한다. 선생님은 학생에게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학생은 따뜻한 보살핌 속 1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자아를 찾고 실존적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사색하고 탐구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실존주의 교육철학자 볼르노(Bollnow)는 교사와 학생의 만남을 통해 단계적 성장이 아닌 단절을 통한 성장을 제시했다. 연속적 과정을 중단하고 하나의 새로운 방향을 들어올 때 연속과 비연속이 변증법적 과정을 주고받으며 인간의 변화와 성장을 끌어낼 수 있다고 봤다. 삶 속에서 운명적으로 뚫고 들어오는 다른 한 인간(교사)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다.

한국이 강박적으로 ‘속도’를 강요하기에 생기는 문제는 느린 시간을 통해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을 가는 궁극적인 목적인 대학을 가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닌 건 어른들은 모두 알고 있다. 사회에 진출할 발판과 도구로 기능할 수 있게 해야지 목적 그 자체가 돼서는 안 된다.

1등을 가리는 서바이벌 예능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 시청자가 열광한 건 ‘경쟁’이 아닌 ‘공정’이란 가치를 프로그램에서 구현했기 때문이다. 흑과 백으로 나눈 계급적 차별에도 출연진 모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건 오로지 음식 맛으로 평가할 것이라는 믿음과 신뢰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백종원과 안성재가 눈을 가리고 음식을 맛본 것이 신기하리만치 회자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그 때문에 한 번쯤 눈을 감고 지금 가는 길에 대한 성찰적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경쟁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 숙명은 피할 수 없다. 다만 마주해야 하는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 것인지 반문해야 한다. 인류가 이토록 성장해 온 건 이런 반성의 미덕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socoo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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