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듣고도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박신양은 “10시간짜리 회의를 100번 했다”고 말했다. 영화 ‘사흘’ 소재가 가진 어려움 때문이었다. 오컬트와 휴먼드라마가 결합했다. 공포와 부성애가 뭉쳐 화학적 빛을 내야 했다. 따뜻함과 차가움이 부딪힌다. 방향성이 서로 다르다. 이를 한 방향으로 모을 수 있는 배우 연기력이 필수적이었다.

오는 14일 개봉하는 ‘사흘’은 죽은 딸 소미(이레 분) 장례 기간 동안 딸 몸에서 깨어나려는 악마를 막으려는 아빠 승도(박신양 분)와 구마의식을 치르는 사제 해신(이민기 분)분투기를 그렸다. 박신양은 딸을 살리려는 심장외과 전문의다. ‘박수건달’(2013) 이후 11년만 스크린 복귀작이다.

노력은 빛을 발했다. 자연스러운 부녀 관계를 만들고자 했다. 북극성을 바라보며 서로 환담을 나누는 장면은 눈부시다. 딸 소미 역을 맡은 이레가 보여주는 싱그러운 웃음은 악마에 빙의된 뒤 차갑게 바뀐다. 극한 대립은 애처로움마저 자아낸다. 이런 지극한 슬픔을 짓기 위해 박신양은 이레를 따로 불렀다. 서로 반말하기로 했다. 어색하지 않을 때까지 쳐다보기도 시도했다. 이런 분위기는 극에 잘 녹아난다.

현문섭 감독은 입봉작에 걸맞지 않은 걸출한 연출 실력을 보여준다. 오프닝 시퀀스부터 강렬하다. 심장 이식 수술로 악마에 빙의된 장면을 속도감 있게 전개한다. 초반 몰입감을 잔뜩 끌어올린 뒤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운명(殞命), 입관(入棺), 발인(發靷)까지 3일장에 맞춰 진행되는 서사는 악마 본질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검은 사제들’(2015) 김시용 미술감독, ‘잠’(2023) 장혁진 음악감독이 선사하는 날카로운 불쾌감도 영화 전체를 휘감는다. CG로 제작된 나방이 날아드는 공포감도 온몸을 찌릿하게 만든다.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영화 ‘새’(1963)가 인간을 공격할 때 느낀 감정과 유사하다.

몰입감이 깨지는 건 구마의식 때다. 신부 해신이 읊는 라틴어가 어색하게 들린다. 액세서리로 얹은 느낌이다. 공포에 맞선 두려움이 용기로 변화하는 부분도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검은사제들’ 김범신(김윤석 분)이 한국어로 최준호(강동원 분)가 라틴어로 주문을 외며 극적 아우라를 만들어냈던 절절함이 ‘사흘’에선 보이지 않는다.

배우도 라틴어 연기에 어려움을 겪은 점을 인정했다. 이민기는 13일 언론시사회에서 “대사 외우는 건 잘한다고 생각했다. 라틴어도 되겠거니 했다. 중구난방으로 숫자 외우는 느낌이었다”며 “중간에 라틴어 자문 선생님도 바뀌었다. 대본이 다시 나오고 복잡해 고생했다. 힘들게 적응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검은사제들’과 비교될 관객 평가를 넘어서는 게 흥행에 주어진 숙제다. ‘파묘’(1156만 관객)로 오컬트 돌풍을 이끈 쇼박스가 제작했다. socool@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