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자주 본 얼굴이 아니다. 촌에 사는 설정이라고 일부러 더 못난이처럼 보이게 한 건 아닌가 싶다. 생경한 인상이지만, 순수하고 맑다. 소리의 재능으로 인생을 바꿔보겠다는 동생과 달리 인생에 순응한다. 대신 동생이 이루고자 하는 꿈을 물심양면으로 도우려 한다. 그 진심이 왈칵 눈물을 쏟게 만든다. 이른바 국극 신드롬을 일으킨 tvN ‘정년이’의 서막은 정년(김태리 분)의 언니 정자(오경화 분)의 관계에서 출발했다.

특히 1회 마지막 시퀀스에서 잔상이 크게 남는다. 목포댁(문소리 분) 몰래 동생을 서울로 보내려는 과정에서 정자가 그려낸 진심은 감동을 준다. 한 인간에 대한 존중이 순수하게 와닿기 때문이다. 성공을 다짐하며 서울로 가는 정년에게 “성공 못 혀도 서럽고 집 생각 나면 꼭 돌와와잉. 내가 밤에 문 안 잠글랑께”란 대사를 던지는 장면은 유독 강렬했다. 경험이 많지 않은 배우의 내공이 아니었다.

오경화는 지난 14일 서울 중구 스포츠서울 사옥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제가 추구하는 연기가 네 가지 키워드에 있어요. 진실 진심 믿음 마음이에요. 심장이 심실과 심방으로 나뉘어 있잖아요. 네 가지 칸에 하나씩 단어를 넣어놨어요. 그리고 피가 도는 것처럼 저 네 가지 단어가 유기적으로 나왔으면 해요. 늘 제 연기에 네 단어가 맴돌았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연출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연기,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고민하는 연기는 ‘무언가 하지 않는 연기’다. 굳이 큰 표정이나 행동, 변화를 주지 않고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장면에 힘을 싣는 연기를 원한다. 정자에겐 ‘존재하는 연기’가 보인다. 별다른 액션이 없음에도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친다.

“여기저기서 칭찬을 많이 받았어요. 작가님이 판을 잘 깔아줬고, 감독님께서 잘 매만져 주셨죠. 어떻게 순수하게 존재하는가를 고민하긴 해요. 태리 언니 영향이 커요. 저는 태리 언니가 연기하는 걸 눈 앞에서 봤잖아요. 제 눈이 카메라였어요. 시청자들이 불쌍혀요. 그 좋은 걸 저만 봤잖아요. 제 눈알이 그럴 수 있었던 건, 태리 언니가 그렇게 있었으니까 가능한 거예요. 사실 저는 언니 얼굴 찍을 때 너무 못했어요. 감정이 과잉 됐어요. 언니에게 큰 도움이 못 된 것 같아서 뒤늦게라도 사과하고 싶어요.”

뛰어난 연기력을 갖췄지만, 아직 신예에 가깝다. 아직도 촬영장은 낯선 곳이다. 편하지 않다. 늘 불안감이 밀려온다고 한다.

“그 불안이란 놈이 위력이 대단해요. 잠재워지는 애가 아니에요. 촬영장에선 ‘불안이’하고 같이 살아요. 덕분에 활동력을 얻어요. 한 번은 제가 올림픽 국가대표 같더라고요. 4년 만에 한 번 기회를 얻잖아요. 제가 연기하는 것도 어떤 기회를 얻어서 하는 것이고요. 엄청난 긴장 속에서 자기를 믿고 시험대에 올라 퍼포먼스를 펼치는 게 비슷하더라고요. 닮은 것 같아요. 그런 마음으로 연기에 임해요.”

출연자 대부분이 창을 하고 소리를 했다. 심지어 목포댁마저도 소리를 불렀다. 주요 배역 중엔 거의 유일하게 정자만 소리를 하지 않았다. 큰 아쉬움이 남았다.

“오디션 볼 때 ‘노래 잘 하냐’고 물어봤어요. 솔직해야 하잖아요. ‘노래 못 한다’고 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국극이 정말 멋있었어요. 언제 또 이런 작품이 나올지 모르잖아요. 촛대라도 서보고 싶었는데 너무 아쉬워요. 다음엔 제작진을 한 번 속여볼 생각이에요. 하하.”

[SS인터뷰②]에서 이어집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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