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창고영화’. 촬영 후 1년 이상 개봉을 하지 못한 영화를 이르는 말이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극장이 아사(餓死) 직전까지 가자 개봉 시기를 무한정 늦춘 한국 영화가 창고로 향했다. 시기를 저울질하며 올해 하반기에 잔뜩 쏟아냈지만, ‘베테랑2’가 750만 관객을 동원한 것을 제외하면 100만 관객 동원조차 실패했다.
“코로나가 많은 것을 바꿔놨다.”
영화감독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편집, CG 등 후반 작업, 홍보 등 일정을 고려하면 크랭크업 후 7~8개월 내 개봉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코로나 감염 등을 이유로 극장을 찾는 인원이 뚝 떨어졌다. 이 틈을 비집고 넷플릭스 등 OTT가 파고들었다.
상반기 천만 관객을 동원한 ‘파묘’ 주연 최민식이 “극장 티켓값 좀 내리라”고 말한 것도 한 이유로 꼽힌다. 지난 8월 MBC ‘질문들’에 나온 배우 최민식은 “지금 영화 1편에 1만5000원(주말 일반관 기준)인데 스트리밍 서비스로 하면 앉아서 여러 개를 보는데 발품 팔아서 (영화관을 가겠느냐)”고 지적했다. 심정적으로 이해가 간다는 말도 덧붙였지만, 극장 입장에선 쓰라릴 수밖에 없었다.
‘창고 영화’의 성적은 비교적 좋지 않다. 지난 10월 개봉한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는 촬영 후 5년 만에 개봉했으나, 8만 관객이라는 성적으로 막을 내렸다. 정우 김대명 박병은 등 내로라하는 스타급 배우가 붙었다. 개봉 시기를 놓치자 이미 OTT에서 많이 본 누아르와 차별화에 실패했다.
설경구 장동건 김희애 수현을 내세운 ‘보통의 가족’도 2022년 촬영 2년 뒤인 10월에 개봉했다. 64만 관객까지 동원했으나, 손익분기점 150만 명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작품 호평에도 불구하고 스케일이 큰 영화가 아니라 극장에서 볼만한 유인책을 제공하지 못했단 평이 뒤따랐다.
눈치 게임을 벌이다 연말에 영화가 몰렸다. ‘소방관’ ‘1승’(4일 개봉·2020년 촬영) ‘대가족’(11일·2022~23) ‘하얼빈’(25일·2022~23)까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뮤지컬영화 ‘위키드’와 개봉 3일 만에 44만 관객을 돌파한 디즈니 ‘모아나2’ 등과 맞붙어야 한다.
촬영한 지 4년이 지난 ‘소방관’ ‘1승’은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최근 재편집에 들어갔을 정도다. 쇼츠에 익숙해진 관객 호흡을 따라가야 한다는 위기의식에서다.
주연 곽도원 음주 운전 논란을 겪은 ‘소방관’ 곽경택 감독은 “곽도원 분량은 안 뺐다. 영화가 오랜 시간 끝에 개봉하다 보니 속도가 늦은 감이 있어서 동료들과 어떻게든 재밌게 보일 수 있도록 초반부에 스피드를 올리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1승’ 신연식 감독 역시 “지난주에 후반 작업을 끝냈다. 코로나로 많은 게 달라진 거 같다. 당시보다 더 감각이 빨라졌다”며 “영상 매체를 받아들이고 소비하는 호흡이 빨라졌다는 걸 스스로 느껴서 그 점에 주안을 두고 후반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감독들도 위기를 느끼고 있다. 극장에서 체험할 수 있는 스케일이 큰 영화로 최대한 입체감을 선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안중근 장군 일대기를 다룬 300억 대작 ‘하얼빈’ 우민호 감독은 “한국 영화가 위기다. 그만큼 제작비를 비주얼, 사운드 등 후반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다”며 “TV, 휴대전화, 노트북으로는 체험할 수 없는, 극장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하겠다”고 다짐했다. socoo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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