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배우근 기자] 영어에 능통하지 않은 아시아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뛰려면 통역이 필요하다.
훈련이나 더그아웃에서는 어느정도 의사소통이 되어도, 공식인터뷰나 전략을 논하는 미팅에서는 정확한 내용 전달을 위해 통역이 필수다. 이치로 같은 경우 영어를 꽤 하는 수준으로 알려졌지만, 인터뷰에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영어통역을 늘 대동했다고 한다(그런 측면에서 박찬호는 예외다).
이처럼 통역은 늘 선수의 그림자처럼 함께 다니기에 어쩌면 가족보다 더 선수와 밀접하다. 단순히 귀와 입의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때론 친구나 형처럼 지내고, 그라운드에서는 훈련 보조에 집에서는 자동차 운전에 요리와 은행업무 등도 돕는 등 궂은일까지 한다.
올해 가장 (나쁜쪽으로) 조명을 받은 통역은 오타니의 통역사였던 미즈하라 잇페이다. 그는 오타니의 돈을 빼돌리다 몰락했다. 미즈하라는 오타니의 은행계좌에서 약 1700만 달러(약 249억원)의 거금을 빼내 도박으로 탕진했다고 한다. 미즈하라는 은행사기죄 등으로 기소됐고 내년 1월 1심 선고가 있을 예정이다. 그는 LA에서 음식배달(우버이츠)을 하는게 목격되기도 했다.
믿었던 사람에 발등이 찍힌 오타니는 최근 “내 돈으로 산 야구카드를 돌려달라”며 미즈하라를 상대로 소송을 또 제기했다. 오타니의 배신감이 느껴진다. 미즈하라는 오타니의 은행 계좌에서 돈을 빼내 약 32만5000달러(약 4억5000만원) 상당의 야구카드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즈하라는 오타니에게 도박 대금 1700만 달러를 반환하고 미국 국세청에는 114만 9400달러의 세금과 이자, 벌금을 납부해야 한다. 미즈하라는 이제 야구카드까지 돌려줘야 할 처지가 됐다.
미즈하라는 일본프로야구 닛폰햄 파이터스에서 외국인 선수의 통역을 담당했다. 오타니와는 일본에서 친분을 쌓았고 미국 진출도 함께 했다.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선 일본 대표팀 통역도 맡았다.
오타니는 가깝던 통역의 배신으로 흔들릴 만도 했지만, 올시즌 50-50 클럽에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달성하며 압도적 한해를 보냈다.
LA다저스에서 오타니와 한솥밥을 먹고 있는 야마모토 요시노부의 통역사 소노다 요시히로는 야구계에 꽤 몸담았던 미즈하라와 달리 야구 새내기다. 초등학교때 잠시 야구를 했지만, 이후 쭉 유도를 했고 대학시절 관서지역 대회 3위에 입상할 정도의 실력자라고 한다. 대학 졸업후 미국으로 넘어왔고, 2000년 초반 뉴욕에서 영화쪽 회사에서 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요시히로는 영어엔 능통했지만 현장은 처음이라 야구용어가 귀에 익숙하지 않았다. 기자들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 몇번이나 되묻기도 했다. 막혔을 때는 선배 통역에게 조언을 받아야했다.
어떻게 번역할지, 선수와 기자 사이에서 어떻게 처신할지 등 47세의 루키는 매일이 도전이었다고 술회한다. 요시히로는 1977년생으로 1998년생인 요시노부 보다 21살 더 많다. 둘은 낯선 환경에서 1년간 함께 분투했다.
그런 그를 향해 오타니가 월드시리즈(WS) 우승직후 애정어린 농을 던진 일화가 들린다. 당시 샴페인을 뒤집어쓴 소노다의 모습을 본 오타니가 “울고 있어?”라고 웃으며 놀렸다.
이에 소노다는 “내년 요시노부가 사이영상을 받고 또 우승한다면 정말 울겠다”라며 눈물과 샴페인을 닦았다. 그러면서 “이 눈물은 내가 태어났을 때 일이 생각나서…”라며 발갛게 상기된 눈으로 오타니를 흘겼다. 눈물을 보이고 싶은 않은 중년의 마음을 오타니는 모를 수 있다.
야마모토와 소노다는 지난 3월 2024 MLB 월드투어 서울시리즈(LA다저스-샌디에이고)를 위해 오타니 가족과 함께 서울에 도착했는데, 그때 사진도 잠시 회제였다. 당시 오타니의 부인 다나카 마미코가 처음 공개된게 빅이슈였지만(이때는 통역 미즈하라 부부도 함께 했다), 오른쪽 끝에 선 두명도 팬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마치 요시노부와 소노다가 사진의 오른쪽 끝에서 포즈를 취했는데, 오타니 부부 이상으로 다정해 보였기 때문이다. “오른쪽은 동성 커플?”이라는 멘트가 붙을 정도였다.
스무살 이상 터울의 요시노부와 소노다가 ML 2년차가 되는 2025시즌에는 더 다정하게 지낼지, 그리고 정말 요시노부의 사이영상과 다저스의 WS2연패가 현실이 되며 중년남이 공개적으로 눈물을 인정할지, 내년 시즌이 기다려진다.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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