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본명은 구덕이(임지연 분)다. 구더기처럼 살라고 주인이 지어준 이름이다. 뜻이 통했는지, 구더기처럼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가고 있다.

병든 어미가 눈앞에서 버려지는 꼴을 봤고, 추노꾼에 쫓겨 도망치다 양반 옥태영(손나은 분) 대신 살아났다. 구덕이의 심성에 감화된 옥태영의 할머니 한씨부인(김미숙 분)로부터 손녀의 이름을 받아 청수현 현감의 아들 성윤겸(추영우 분)과 혼례를 마쳤다. 그러나 성윤겸이 성소수자인 데다 역모로 몰려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됐다.

JTBC 토일드라마 ‘옥씨부인전’의 상승세가 예사롭지 않다. 4.2%(닐슨코리아 종합편성채널 기준)로 시작한 시청률은 4회 만에 8.5%까지 치솟았다. 10%는 무난히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드라마는 처절한 현대판 흙수저를 보는 듯 고난의 길을 걷는 구덕이의 삶을 따라간다.

오성으로 알려진 이항복의 고전 ‘유연전’에서 모티브를 얻어 이야기가 매우 사실적이다. 가짜의 삶을 메시지로 ‘다름’에 대한 두 가지 시선 등 현재의 사회적 화두로 이야기를 빠르게 전개하고 있으며, 대사에는 현대인이 쓰는 표현이 곳곳에 포진돼 있다. 사극임에도 로맨스와 액션, 법정물 등 다양한 장르가 고루 담겨 있고, 임지연을 앞세운 가운데 신구를 가리지 않고 연기력이 출중하다. 웰메이드 팩션 사극의 탄생이 엿보인다.

◇생동감 넘치게 ‘가짜의 삶’ 담았다

‘유연전’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스릴러물이다. 행방불명된 형을 죽였다는 모함을 당해 사형을 당한 유연을 위해 그의 처가 진실을 밝히는 이야기다. 1607년에 발생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조선시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위계 때문에 진실로 가는 길이 번번이 막히는 사회상을 담는다.

‘옥씨부인전’ 가짜의 삶을 사는 사람들로 신분제의 부조리를 그린다. 노비 출신임에도 양반이 된 구덕이와 양반 출신이지만 기생 어머니를 둔 서자인 탓에 예인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는 송서인(추영우 분), 현감의 아들이지만 성소수자여서 혼례를 미루며 산 성윤겸은 같은 결의 삶을 산다.

다름을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인간의 본성과 이익에 눈이 멀어 죄 없는 사람을 함부로 처단하려는 위정자의 모습이 2024년과 닮았다. 불과 4회까지 나오지 않았음에도 매우 빠른 속도로 전개돼 숨 쉴 틈이 없다. 각종 사건이 쉴새 없이 몰아쳐, 몰입이 떨어지는 걸 막는다.

◇넘나드는 장르, 개인기로 풀어내는 배우들

‘옥씨부인전’은 사극이라는 큰 그릇에 로맨스와 액션, 법정, 스릴러가 고루 담겼다. 복합적인 장르가 이질감 없이 담긴다는 데 강점이 있다. 옥태영과 성윤겸, 송서인의 삼각관계가 점차 복잡하게 흘러가는 가운데, 각종 조항과 판례를 외우는 등 법 분야에 재능이 뛰어난 구덕이가 현감(성동일 분)을 도와 조선시대 변호사로 활약하는 장면은 마치 법정물을 연상케 했다. 무인을 꿈 꾸는 성윤겸을 활용한 액션에 온갖 죄를 저지르는 빌런의 정체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

여러 장르를 자연스럽게 그려내는 건 배우들의 몫이다. 노비부터 양반까지, 파격적인 신분 상승을 겪은 구덕이의 변화를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건 임지연이다. 훌륭한 인품으로 사람들을 보살피는 중에 여인의 매력도 은은히 드러내고 있다. 절체절명의 순간 터져 나오는 아우라도 엄청나다.

신예 추영우는 코믹한 송서인과 진중한 성윤겸을 자연스럽게 오고 간다. 대중성과 연기력이 출중하다. 두 사람 외에도 성동일, 오정세, 오대환, 김재화, 김미숙 등 출중한 배우들이 빈틈을 메우고 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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