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임홍규기자]아버지가 타던 자동차를 아들과 딸이 탄다. 물론 같은 자동차는 아니다. 바로 같은 브랜드의 자동차. 아버지가 타던 ‘쏘나타’가 큰딸의 생애 첫차가 되고, 멋 내기 좋아하던 삼촌이 타던 ‘코란도’가 조카의 애마가 된다.

세대 갈등이 사회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는 시대에, 이들 브랜드의 자동차는 세대를 잇는다. 부모 세대 자동차는 안정적인 삶을 의미하는 상징과 같았다. 손으로 꼼꼼히 세차한 자동차를 배경으로 가족 모두가 기념 사진을 찍는 일은 누구에게나 허락되지 않았다. 그만큼 자동차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자녀 세대 자동차는 자유로운 삶을 채워주는 도구로 자리매김했다. 생활에서 자동차가 갖는 위치와 성격은 달라졌지만 모두 한 세대의 꿈을 안고 자동차는 달렸고, 또 달리고 있다. 급속한 경제 발전 속에서 ‘마이카(My Car) 시대’가 열렸다. 국내 자동차 등록 대수가 2000만대를 넘어선 지가 이미 몇 해전이다. 선택 폭도 넓어졌다. 경쟁 차종에 밀려, 혹은 소비자의 요구을 읽지 못해 단명하는 자동차 브랜드도 속출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세대를 거듭해 살아남아, 여전히 사랑받는 브랜드의 가치는 더욱 도드라진다. 국내 대표적인 장수 브랜드로 꼽히는 ‘쏘나타’ ‘그랜저’ ‘코란도’ 3개 차종의 생존 비결을 성능 혁신과 사회 문화적인 변화와 함께 되짚어봤다.

◇혁신으로 거듭난 쏘나타

쏘나타는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을까. 1980년대 소득이 증가하면서 더 나은 삶의 질을 추구하는 새로운 소비 추세가 힘을 받기 시작했다.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중형차에 대한 관심이 늘기 시작했다. 이에 발맞춰 출시된 모델이 쏘나타였다. 쏘나타는 한때 중산층의 보증수표와 같은 모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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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쏘나타’  제공 | 현대차

사본 -2세대 쏘나타(88년)-1
2세대 ‘쏘나타’ 제공 | 현대차

사본 -3세대 쏘나타(쏘나타Ⅱ,93년)
3세대 ‘쏘나타Ⅱ’ 제공 | 현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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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대 ‘EF 쏘나타’ 제공 | 현대차

사본 -4세대 뉴 EF쏘나타(01년)
4세대 ‘뉴 EF쏘나타’ 제공 | 현대차

사본 -5세대 쏘나타(NF쏘나타,04년)
5세대 ‘NF쏘나타’ 제공 | 현대차

사본 -6세대 쏘나타(YF쏘나타,09년)
6세대 ‘YF쏘나타’ 제공 | 현대차

처음부터 쏘나타가 질주한 것은 아니다. 전작인 ‘스텔라’ 인기에 고무된 현대차는 스텔라의 기본 차체에 1800㏄와 2000㏄ 2종의 시리우스 SOHC 엔진을 탑재한 소나타를 출시했다. 자동 정속주행장치, 파워핸들, 자동조절 시트, 전동식 리모컨 백미러 등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첨단사양도 적용하는 등 공을 들였지만 결과는 기대치를 밑돌았다. 1985년 출시 첫해 1029대, 1986년 2332대, 1987년 2270대 수준에 판매되는 데에 그쳤다. 당시 국내 자동차 시장 규모를 고려한다고 해도 턱없이 낮은 판매고였다. 쏘나타가 첫번째 생존의 갈림길에 선 것. 결국 현대차는 쏘나타를 살리기로 하고 1988년 2세대 모델을 선보인다. 쏘나타는 이때부터 본격적인 가속 페달을 밟기 시작한다. 국내 소비자의 높아진 디자인 눈높이를 맞추고 국내 지형에 맞게 구동방식을 바꾼 것이 성공의 비결로 꼽힌다. 2세대 쏘나타는 국내 최초의 자체 디자인 차량이다.기존의 각진 디자인에서 벗어던졌다. 또한 당시 중형차의 상징과도 같던 후륜구동 대신 전륜구동 방식을 채택했다. ‘쏘나타’는 1989년 한해 7만9678대가 판매돼 국내 전체 차종 통합 판매 3위를 기록하면서 본격적인 성장세를 타기 시작했다.

사본 -7세대 쏘나타(쏘나타 뉴라이즈,17년)
7세대 페이스 리프트 모델인 ‘쏘나타 뉴라이즈’  제공 | 현대차

3세대 모델인 쏘나타II가 1993년 첫선을 보인다. 쏘나타II는 불과 33개월 동안 무려 60만대가 판매되는 기염을 토한다. 당시 첨단 사양인 SRS 에어백, 브레이크 잠김 방지장치(ABS), 전자식 서스펜션(ECS) 등을 적용해 경쟁 모델과 차별화했다. 이후 현대차는 1998년 3월 출시된 EF 쏘나타를 통해 대한민국 중형차의 기술 독립을 선언한다. 독자기술로 개발한 175마력의 2500㏄ 델타 엔진과 인공지능 하이벡(HIVE) 4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해 한국 중형차의 기술력을 전세계에 알렸다. 하지만 출시와 함께 위기가 찾아왔다. IMF 구제금융의 파고가 높았기 때문이다. 1998년 출시 첫해 판매량이 전년 대비 30%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듬해 바로 부활했다. 1999년 2월부터 2000년 8월까지 19개월간 연속으로 국내 전 차종 판매 1위를 기록한다. EF쏘나타를 통해 현대차는 북미 시장에서 한국도 제대로 된 차를 만든다는 평가를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했다. 역대 쏘나타 모델 중 유일하게 뒷번호판이 트렁크가 아닌 범퍼에 부착된 모델이기도 하다.

2001년 선보인 5세대 모델부터 NF쏘나타는 차체를 키우기 시작한다. 2007년 선보인 5세대 페이스 리프트 모델인 트랜스폼은 이례적으로 5세대 신차 모델보다 판매고가 높은 진기록을 쓰기도 했다. 6세대 모델인 YF쏘나타는 2011년 5월 국내 최초의 중형 하이브리드인 ‘쏘나타 하이브리드’를 선보이며 국내 친환경차 시장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기도 했다. 7세대 LF소나타에 이르러서는 다시 자동차의 본질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페이스 리프트 모델인 쏘나타 뉴 라이즈를 선보이고 트랜스폼의 영광을 재현한다는 포부다.

◇영토 확장에 나선 코란도

코란도의 역사는 깊다. 코란도는 국내 최장수 모델로 국내 기네스북에도 올라와 있다. 코란도의 조상은 1969년 신진자동차공업이 미국 카이저사와의 기술제휴를 통해 생산한 첫 국산 지프 ‘CJ-5’. 이후 한국이 세계무대로 도약을 준비하던 1980년대 시대상을 반영해 ‘한국인은 할 수 있다(KORean cAN DO)’는 의미를 담은 코란도가 첫선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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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코란도’ 제공 | 쌍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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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대 ‘코란도’ 제공 | 쌍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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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대 ‘코란도’  제공 | 쌍용차

1988년 말 소비자들은 코란도 훼미리 등장에 주목했다. 정통 오프로드 모델은 스티어링휠과 브레이크 등을 둔감하게 만들지만 코란도 훼미리부터 승용차의 부드러운 주행감을 가미하기 시작했다. 출시 2년 만에 판매량 2만대 돌파하며 순항했다. 1989년 당시 코란도 인기를 반영한 ‘미스 코뿔소, 미스터 코란도’라는 영화가 개봉되기도 했다. 해외 모터스포츠 대회에 참가해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시작한 것도 코란도가 시초로 꼽힌다. 1990년 2월 코란도는 제10회 키프러스 랠리에 참가해 국내 자동차산업 사상 최초로 국제 랠리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1996년 쌍용차는 메르세데스 벤츠 엔진을 장착한 3세대 모델인 ‘뉴 코란도’를 선보인다. 2년 뒤에는 벤츠와 공동 개발한 120마력 ‘터보 인터쿨러 엔진’장착한다. 아울러 당시 국내 최초로 주행 중 이륜구동과 사륜구동을 조절하는 ‘시프트 온 더 플라이’를 적용했고 세계 최초로 사륜구동 차에 ABS(안티 록 브레이크 시스템)를 도입하기도 했다. 뉴 코란도는 쌍용차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코란도를 갖고 싶어 쌍용차에 입사했다는 신입사원이 있을 정도로 인기는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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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란도C’ 제공 | 쌍용차

2005년 상하이자동차 인수 후 코란는 단종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드는 듯 했다. 2009년 하반기에는 새로워진 코란도 출시를 목표로 내부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하지만 기업회생절차로 다시 한번 계획은 무기한 연기된다. 그리고 끝내 코란도는 2011년 부활한다. 쌍용차는 2011년 코란도 4세대 모델인 코란도C를 출시했다. 쌍용차 최초 전륜구동 방식과 모노코크 바디 기반 SUV로 탈바꿈했다. 2012년부터 아웃도어 열풍에 SUV가 주목받으면서 다시금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현재는 코란도C, 코란도 스포츠, 코란도 투리스모 등으로 나뉜다.

◇그랜저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올해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은 어떤 모델일까. 바로 6세대 그랜저이다. 올해 1~5월까지 판매량이 6만대가 넘어섰다. 하지만 1986년 그랜저의 첫 출시 당시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최근 그랜저 판매실적은 상전벽해, 그 자체이다.

사본 -1세대 그랜저
1세대 ‘그랜저’ 제공 | 현대차

사본 -2세대 뉴 그랜저
2세대 ‘뉴 그랜저’ 제공 | 현대차

사본 -3세대 그랜저(XG)
3세대 ‘그랜저’ 제공 | 현대차

사본 -4세대 그랜저(TG)
4세대 ‘그랜저’ 제공 | 현대차

사본 -5세대 그랜저(HG)
5세대 ‘그랜저’ 제공 | 현대차

1986년 출시된 1세대 그랜저는 사장님이나 탈 수 있는 모델이었다. 1세대 ‘그랜저’는 ‘L카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일본 미쓰비시와 공동 개발한 모델이다. 일본에서는 ‘데보네어’라는 이름으로 판매됐다. 일본에서는 흥행에 참패했지만 그랜저는 국내 대형차 시장을 열며 최고급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1세대 그랜저는 흔히 ‘각 그랜저’로 불린다. 출시 당시 국내 대형 승용차 수요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승승장구했다. 1세대 모델은 총 9만2571대가 판매됐다.

1992년 9월 출시된 2세대 ‘뉴 그랜저’는 한층 부드러워진다. 곡선미를 살린 유럽풍 다이내믹 스타일에 중후한 이미지를 조화시키며 당시 국내 시판 차종 중 가장 큰 차체와 실내공간을 자랑했다. 특히 에어백, 능동형 안전장치(TCS), ECM 룸미러, 차체제어시스템(ECS), 4륜 독립현가장치 등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첨단 안전장치 및 편의사양을 선보이며 차별화했다.

사본 -6세대 신형 그랜저(IG)
6세대 ‘그랜저’ 제공 | 현대차

그랜저는 이후 세대를 거듭하며 성능을 크게 올리면서 국내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한다. 1988년 196마력의 시그마 3.0 V6 DOHC 엔진을 장착한 3세대 모델을 선보인 현대차는 2005년 4세대 모델에 이르러서는 현대·기아차가 독자 개발한 6단 자동변속기를 적용하고 이를 통해 엔진 성능은 물론 출력과 연비까지 향상시켰다. 6년 뒤인 2011년 출시된 5세대 그랜저는 역대 그랜저 중 가장 높은 판매고를 기록한다. 품격을 유지하면서도 상품성을 끌어올린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국내 시장에서 총 50만6202대가 판매됐다. 지난해 말 선보인 7세대는 역동적인 외관과 주행 성능으로 젊은 층의 수요까지 흡수하면서 국내 대표 세단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hong7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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