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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유인근 선임기자]박성현(24·KEB하나은행)은 별명이 참 많은 골퍼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국내에 있을 때 붙여진 ‘남달라’와 ‘닥공’ 그리고 미국 진출후 따라다니는 ‘슈퍼루키’다. 이들 3개의 별명은 무명 선수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로 거듭난 박성현의 골프인생을 절묘하게 대변해주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그 남다른 박성현이 드디어 고대하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데뷔 첫승을 거뒀다. 그것도 메이저 대회인 US여자오픈(총상금 500만 달러)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별명처럼 ‘남달라의 시대’가 열렸음을 전세계 골프팬들에게 알렸다. 그는 17일(한국시간) 미국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파72·6762야드)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 날 4라운드에서 버디 6개와 보기 1개로 5타를 줄여 최종합계 11언더파 277타로 정상에 올랐다. 박성현은 우승 상금으로 90만달러(약 10억 2000만원)를 받았고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순금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중학교 때부터 ‘모든 일에 성공하려면 남달라야 한다’는 좌우명을 갖고 있었던 그의 남다른 성공스토리가 새로운 한 주의 시작부터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들고 있다.
◇ 남달랐던 ‘무명시절’박성현이 ‘남달라’로 불린데는 이유가 있다. 챔피언이 되기 위해선 뭔가 남달라야 한다는 생각에서 골프백에서 써놓은 글귀가 그대로 별명이 됐다. 그런데 별명처럼 그는 남달았다. 등장부터가 그랬다. 걸출한 스타들 대부분이 일찍부터 주목을 받았던 것과 달리 그는 철저하게 무명의 시절을 겪으며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성장했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때 태극마크를 달기도 했지만 바로 드라이버 입스(샷 실수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며 국가대표에서 탈락했고 이후 수년간 자신과 외로운 싸움을 벌였다. 2011년 프로가 된 이후에도 맹장수술과 교통사고 등이 겹치면서 2014년이 되어서야 2부투어 상금왕 자격으로 정규투어에 진출했다. 눈물젖은 빵을 먹어본 그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고 이기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나갔다. 입스는 프로가 돼서도 한동안 그를 괴롭혔지만 그 막막했던 어려움을 훈련으로 극복했다. 스윙이 가장 좋았던 때의 동영상을 수도 없이 돌려보면서 손바닥이 까지고 부르트도록 연습했다. 그러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샷이 똑바로 잡혀갔고 2015년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위기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단련했던 강한 정신력이 그 바탕이 됐다.
◇ 남다른 DNA와 노력2013년 3승을 거두며 신데렐라로 부상한 박성현이 가장 주목을 받았던 부분은 ‘장타’였다. 버드나무처럼 하늘하늘한 유연성을 바탕으로 280야드를 넘나드는 장타를 펑펑 때려대자 골프계 전체가 블랙홀처럼 박성현에게 빨려들어갔다. 장타 뿐만이 아니었다. 여자 프로들에게서는 기대 하기 힘든 백스핀 걸리는 아이언샷 등 남자 프로들을 연상케 하는 파워 넘치는 샷에 갤러리들은 열광했다. 중국의 펑산산은 박성현과 동반플레이를 해본 뒤 “그렇게 날씬한 몸매에서 어떻게 그런 파워가 나오냐”고 감탄하기도 했다. 이런 파워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남다른 DNA가 배경이 됐다. 축구선수 출신인 아버지와 태권도 공인3단의 선수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박성현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강한 골반과 허리를 갖고 있다. 여기에 타고난 유연성도 장타에 힘을 보탰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후천적인 노력이었다. 그는 파워를 기르기 매일 팔굽혀펴기를 200개 이상씩 할 정도로 땀을 흘렸다. 그렇게 갈고 닦은 장타는 미국 진출 이후 LPGA의 대표적인 장타자인 렉시 톰슨(미국)과의 대결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 ‘닥공 스타일’, 미국에서도 통했다박성현의 별명 가운데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닥공’이다. 한 마디로 ‘닥치고 공격’이다. 2016년 한해만 7승을 거두며 국내 무대를 평정할때 그의 닥공은 최고로 빛을 발했다. 그는 OB(아웃오브바운즈)가 나더라도 장타를 앞세운 공격적인 경기 스타일을 굽히지 않았다. 때로 우승 직전에서 쓰라린 패배를 맛봤지만 그는 미련하리만치 공격 위주로 경기를 펼쳤다. 그것이 자신과도 잘 맞았다. 그 ‘닥공’ 스타일은 이번 US여오픈 우승에서도 빛났다. 이번 대회 전까지 올시즌 13개 대회에 출전해 준우승 1번 그리고 5위 안에 4번을 기록하며 꾸준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우승에 목말랐던 그는 자신의 장점인 공격 스타일을 살리기 위해 대회 직전 캐디를 교체를 감행했다. 전 캐디였던 콜린 칸은 안정적인 스타일을 요구해 공격적인 박성현과 잘 맞지 않았다. 6월 초부터 새롭게 호흡을 맞춘 데이비드 존스는 박성현의 기를 살리면서 이번 우승에 큰 역할을 했다. 박성현의 장점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위기 때마다 ‘항상 연습하던 거니까 믿고 편하게 하라’는 말로 격려했다. 그 결과 이번 US여자오픈에서는 2라운드까지는 중하위권에서 처져있었지만 3, 4라운드에서 버디 5개씩 10타를 줄이며 대 역전극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번 우승으로 박성현은 미국 진출 뒤 따라붙었던 ‘슈퍼루키’란 별명의 가치를 완벽하게 입증했다. 사실상 신인상을 확정했다. 이제부터는 ‘슈퍼루키’를 넘어 본격적으로 세계 1위를 향한 발걸음을 시작한다. 이번 승리로 그는 올해의 선수 부문 3위에 올랐고 상금왕 부문에서도 2위(145만달러)로 껑충 뛰어오르며 1위 유소연(170만달러)을 위협했다. 세계랭킹도 5위까지 치솟았다. 바야흐로 박성현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ink@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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