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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야구인 선배로 창피하다.”
고사 위기에 빠진 대학야구의 현실을 취재하는 과정에 몇몇 대학야구 감독들이 한탄을 했다. 감독에게 아무런 힘이 없다는 자괴감도 있지만 지도자 이전에 야구인 선배로 후배들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건 아닌지에 대한 성찰도 묻어 났다.
한 명문대 야구부 감독은 “주말리그의 부당함, 열악한 재정지원 이유 등을 명확히 알고 싶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 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KUSF) 등에 질의를 한적이 있다. 소위 상급기관이라는 곳에서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려는듯 ‘우리 결정이 아니다’는 말만 되풀이하더라. 더 힘 빠지는 건, 동료 감독들이 ‘나서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며 따가운 눈총을 보내더라”고 털어놨다. 예산 집행을 KUSF에서 하니 이들의 눈밖에 나면 자금난에 시달려야 한다. 각 감독도 가정을 가진 사회인이라, KUSF의 전횡에 두 눈 꼭 감고 안정적으로 월급을 타가는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지도자로서의 사명감은 예전에 사라졌고 그나마 안정적인 예산 배당을 통해 학무보 부담을 줄이는 게 감독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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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로부터 독립해 가맹단체가 된 대학야구연맹은 사실상 주말리그 일정을 편성하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다. 하다못해 홈페이지 관리조차 이뤄지지 않아 회장 인사말을 제외한 연맹 연혁이나 조직도조차 찾을 수 없다. 연맹이 출범할 때부터 몇몇 감독을 중심으로 정부 예산을 따내기 위해 협회로부터 독립한다는 의혹이 있었는데 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나아진 게 없다. 아마추어 종목 단체장은 학생선수들의 권익보호와 안정적인 대회 운영 등을 위해 출연금을 내는게 당연하다. 명예직이 아닌 봉사직으로 여겨야하기 때문이다. 회장이 출연금을 낼 형편이 안되면 스폰서를 구해 재정건전성을 확보해야 마땅하다. KUSF에서 내려주는 예산에만 의존하면서 “정부 기관이 재정을 집행하기 때문에 스폰서를 붙일 수 없다고 한다”는 무책임한 변명만 늘어놓는다. 문체부를 포함한 어떤 단체도 후원을 거절하거나 금지하지 않는다.
야구부를 바라보는 대학의 시선도 이중적이다. 모 대학 관계자는 “총장님께서 ‘전국대회 우승을 해도 신문에 기사 한 줄 나지 않는데 야구부를 존속할 필요가 있는가. 운동부는 대학의 홍보를 위해 존재하는 곳인데 홍보도구로서 가치가 없다’며 툭하면 해체하거나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고 귀띔했다. 체육 특기생에 대한 장학금 제도도 사라지는 추세이고, 이른바 방과 후 훈련, 주말리그 시행 등 일반학생보다 훨씬 강도 높은 일정으로 몰아 넣어 놓고 대학 홍보까지 바라고 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개인종목 선수들이 재학기간 대부분을 훈련 효율성 명목으로 해외에 체류하는 것은 문제없고 단체종목 학생 선수들이 대회를 위해 훈련하는 것은 정부 방침을 위반하는 심각한 문제로 인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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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실에 현장 감독들마저 ‘상급 기관의 비위를 건드리지 말고 가만히 앉아 시키는대로 하자. 그래야 예산을 받을 수 있다’며 현실을 선택했으니 선수들이 설 자리를 잃는게 당연하다. 대학야구의 고사는 고교야구의 부패를 몰고올 가능성이 있다. 이미 콧대 높은 몇몇 고교야구 감독을 중심으로 “우리도 협회에서 독립해 정부 예산을 따로 받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스승으로, 해당 종목 선배로, 제자와 후배들의 길라잡이가 돼야 할 지도자들의 사명감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얘기가 됐다.
체육부차장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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