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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노송(老松)이 아름다운 이유는 억겁의 세월을 견디며 변함없는 자태를 뽐내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라진 팀의 마지막 1차 지명으로 막내 구단의 최선참으로 녹슬지 않은 실력을 뽐내는 노송 같은 선수가 있다. 지난 8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넥센전에서 역대 7번째 2100안타를 때려낸 KT 이진영(38)이 그 주인공이다.
군산상고 졸업반이던 1999년 쌍방울에 1차지명돼 데뷔시즌을 49안타로 시작한 이진영은 자신의 통산 2141번째 경기에서 2100안타를 때려냈다. 쌍방울이 해체된 뒤 SK에서 주전으로 도약한 이진영은 2000년대 중후반 ‘국민우익수’라는 애칭을 들을만큼 강견을 과시했다. 몸을 사리지 않는 수비로 주전 자리를 꿰찼지만 고졸 4년 차이던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연속시즌 3할 이상을 때려내며 자신만의 독특한 타격이론을 정립하기 시작했다.
지난 9일 고척 넥센전을 앞두고 만난이진영은 “눈에 가까운 곳으로 날아드는 공은 확실히 쳐낸다는 생각으로 타석에 서고 있다. 내가 잘 칠 수 있는, 좋아하는 곳으로 들어오는 공을 놓치지 않아야 3할을 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통산 타율 3할을 웃도는(0.304) 배경이기도 하고, 허벅지 등 크고 작은 부상 속에서도 변함없는 활약을 펼치는 이유가 자기만의 확실한 타격철학 덕분이다. 그러고보면 이진영은 2100안타 이상 때려낸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확실한 주전이라고 못박기 어렵다. 부상 탓도 있었지만 일발장타보다 라인드라이브 타구에 기반을 둔 교타자에 가깝기 때문에 플래툰 시스템으로 경기 출장이 들쑥날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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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왼손타자이면서 교타자에 가까운 LG 박용택(2002년 입단)이 2062경기에서 7676타수(2366안타), 삼성 박한이(2001년 입단)가 2076경기에서 7253타수(2136안타)인 것과 차이가 있다. 우타자 중 유일하게 2100안타(2156개)를 돌파한 동갑내기 절친이자 같은 해 입단한 KIA 정성훈이 2210경기에서 7339타수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진영이 타격보다는 수비형 선수였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진영은 “경기 출전여부는 선수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쉬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주어진 여건 속에 내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따라왔다고 생각한다. 2100안타보다 30개와 29개를 각각 남겨둔 1000타점, 1000득점이 더 가치있는 기록일 것 같다. 솔직히 욕심이 나는 수치”라고 말했다. 안타는 개인의 능력으로 만들어낼 수 있지만 타점과 득점은 팀원들의 도움 없이 불가능하다. 프로 20년차가 되다보니 팀 플레이의 중요성을 더 크게 느끼고 있는 셈이다.
‘홈런의 시대’에 사실상 교타자의 전형에 가까운 타격폼을 가진 유일한 선수다. 포스트 이진영을 꼽기 어려운 이유다. 이진영은 “후배들의 기술이나 능력을 보면 부러울 때도 있다. 시대의 흐름이 홈런을 선호하는 것은 맞지만 모두가 홈런타자가 되기 위한 스윙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다소 무거운 화두를 던졌다. 그는 “체형과 능력에 맞는 타격을 하는게 성공 확률을 높이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배트 중심에 맞히는 능력보다 무조건 멀리 치는 능력만 갖춘다면 프로야구 선수로 가치가 떨어진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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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를 치다보면 홈런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게 모든 타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다. 이진영은 “타격훈련 때 배트 중심에 정확히 맞히기 위한 노력을 하는 선수가 몇 명이나 있을까. 무의미한 홈런 더비로 타격훈련을 마치는 선수들이 생각보다 많다. 이런 선수들을 보면 안타깝다. 더 좋은 기량을 뽐내 더 많은 경기에 나설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잃어버리는 꼴”이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백업 아닌 백업으로 20년을 뛰면서 2100안타를 때려낼 수 있는 비결도 훈련 때부터 ‘경기에 도움이 되는 타격’을 습관화한 덕분이다. 그는 “어떤 타격이 맞다 틀리다는 없다. 그러나 어떤 타격이든 배트 중심에 맞혀야 기복없이 꾸준함을 유지할 수 있다. 야구는 반복훈련의 결과로 평가받는 종목이니 더 많은 후배들이 기본을 중요하게 여기는 풍토가 조성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그래야 더 많은 후배가 자신의 기록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묻어있는 표정이었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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