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

[스포츠서울 정하은기자]“어디에 있어도 어디에 있지 않은 것 같았던 과거, 이젠 내려놓으려고요.” 어느덧 30대 중반에 접어든 배우 유아인(35)에게 많은 변화들이 찾아왔다.

24일 개봉한 ‘#살아있다’(조일형 감독)는 원인불명 증세의 사람들이 공격을 시작하며 통제 불능에 빠진 가운데, 데이터, 와이파이, 문자, 전화 모든 것이 끊긴 채 홀로 아파트에 고립된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생존 스릴러다. 유아인은 하루아침에 세상과 단절돼 혼자 남겨지며 패닉에 빠지는 인물 ‘준우’를 연기한다. 침착하고 대범하게 자신의 생존 전략을 계획해 나가는 유빈 역의 박신혜와 호흡을 맞췄다.

중반부 박신혜가 등장하기 전까지 유아인은 초반 40분가량을 원맨쇼에 가까운 연기를 펼친다. 새로운 도전인 동시에 홀로 영화의 절반가량을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 역시 상당했을 터. 하지만 유아인은 모든 것에서 고립된 상태에서 정체불명의 좀비들에게 쫓기며 겪는 불안과 공포심을 밀도 깊은 연기력으로 소화했다. 영화 시사 후 만난 유아인은 “혼자 오래 극을 끌고 나가다 보니 부담스럽고 조심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제 도전의식을 자극한 지점이기도 했다. 이 정도로 초반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영화는 없었는데 우려했던 것보다 잘 나온 거 같아 안도감이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살아있다’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준비를 많이 한 영화라고 힘주어 말했다. “장르물도 처음이었고 원맨쇼를 펼쳐야 하는 점도 있었고 결과에 대한 책임감도 있어서 연습을 많이 했다. 리허설도 많이 하고 현장에서 편집본도 정말 많이 봤다. 그렇게 임하다 보니 영화를 전보다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는 측면도 생겼다.” 박신혜와의 호흡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서른살인 박신혜에 대해 “누나 같을 때가 있다”고 표현한 그는 “이 영화의 박신혜 씨가 어떤 영화의 박신혜 씨보다 제일 좋았던 거 같다. 현장에서 수동적이고 눈치보는 스타일 아니더라. 자기 의견을 잘 피력하면서 유연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현장에 녹아든다. 까칠한 면 전혀 없고, 부정적인 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배우 유아인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있다면 바로 ‘청춘의 표상’이다. 그는 영화 ‘좋지 아니한가’ ‘완득이’ ‘깡철이’ ‘버닝’ 등 많은 작품 속에서 다양한 청춘들의 얼굴을 그려왔다. 그 중에서도 ‘#살아있다’의 준우는 가장 친근하고 인간적인 청춘의 면모를 보여줬다. 영화에서도 유아인 특유의 소년미를 벗고 옆집 청년의 모습을 담았다.

준우의 모습이 실제 본인과도 많이 닮았다고 운을 뗀 유아인은 “모니터링한 친구들이나 지인들도 하나같이 ‘제일 너같았다’고 하더라”라며 “매 시대의 젊은이들을 연기해온 거 같은데, 그중 제일 덜 진지하고 가장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가장 편하게 느낄 수 있는 친구였다”라고 말했다. 현실에선 여전한 소년미를 가진 유아인에게 이를 언급하자 “잘 모르겠다”고 머쓱한 웃음을 지은 그는 “확실한 건 소년성, 순수성을 놓치지 않고 자각하고 이어가려고 하는 편이다. 스무 살 당시 인터뷰에서도 나이 먹는게 싫다고 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싫다. 그래도 나이 먹는 일의 장점과 재미를 느끼려 노력 중이다”라며 웃었다.

‘#살아있다’는 기존의 유아인이 쌓아오던 필모그래피에서 조금은 벗어난 작품이기도 하다. 좀비를 그린 장르물인 데다, 신인 감독의 작품이란 점에서 그렇다. 출연 계기에 대해 유아인은 “언뜻 보면 오락영화 같다. 그 안에서 부담스럽지 않게 시대를 반영한 게 좋았다. 생존과 좀비를 다루면서 살아간다는 것 어떤 의미일까 질문을 오글거리고 진지하게 이야기했다면 되려 싫었을 거 같다. 어렵지 않게 전달할 수 있을 영화라 기대하면서 선택했다”라고 답했다.

유아인

그의 말대로 유아인이 출연했던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도 ‘#살아있다’와 준우란 캐릭터는 무게를 한결 뺀 느낌이었다. 그는 “그동안 진지하고 딥한 것들에 많이 집착했다. 뭐가 진짜 의미인지 좋은 메시지인지 모르면서 그런 영화들을 우선순위에 두고 쫓아다녔다. 그게 배우로서 살아가면서 생존할 수 있고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비교적 진지하고, 무겁고, 선 굵은 캐릭터를 많이 맡았던 거 같다”고 돌아봤다.

오랜만에 영화로 만난 유아인은 예민하고 날카로워 보이던 과거보다 부쩍 평온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MBC 관찰 예능 ‘나혼자산다’에 출연한 점만 봐도 유아인의 변화에 대한 의지가 엿보인다. “‘유아인이?’라는 반응이더라. 그렇게 의외인가?”라고 큰 웃음을 지은 유아인은 “예능인들에 대한 존경심과 존중을 큰 목소리로 표현하고 싶었다. 언제부턴가 콧대 높은 배우들보다 예능인들이 대중에게 더 큰 위로와 감동을 주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후로 예능도 더 많이 보게 되고 출연까지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딱 하나 두려운 건 유아인 연관 검색어에 ‘#살아있다’보다 ‘나혼자산다’가 먼저 뜬다는 거다. 이게 현실인가 보다”라며 웃었다.

어느덧 30대 중반으로 접어든 유아인은 내면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은 듯했다. 배우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어떤게 ‘배우다운 것’인지에 대한 스스로 가지고 있었던 불편한 기준들을 많이 깨부순 거 같다고 털어놓으며 ”그런 고정관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신인 감독과 작업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서도 “이전엔 현장에서 수동적인 편이었다면, 이젠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싶다. 그래야 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 같다. 좀 더 활동적으로 현장에 임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의무감도 생겼다”고 말했다.

유아인은 각종 논란이 있었던 과거를 웃으며 회상하기도 했다. 연예인으로서 남이 보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의 괴리감을 느낀 적은 없냐고 질문하자 역시나 솔직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게 재미고 의미인 거 같다. 저만큼 그에 도가 튼 사람도 없을 거다”라고 너스레를 떤 그는 “오해와 편견, 선입견들과 실제 ‘나’ 사이를 조율하면서 커다란 덩어리의 ‘유아인’이란 사람을 구축하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 오해로 생긴 순간적인 서운함과 상처는 이젠 완전히 무뎌졌다. 20대 때 만큼 큰 데미지가 없다”라고 담담히 말했다.

‘#살아있다’ 이후 유아인이 그리는 그림은 어떤 것이냐 묻자 “지금은 진짜 없다. 이제는 내가 그리는 그림에 맞춰 가는게 아니라 주변 그림에 수용하면서 가고 싶다”고 답했다. “흘러가는대로 내버려두고 싶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 나이에 고민을 참 많이 해서 이젠 그러고 싶지 않고 내려놓고 싶다”고 진지하게 말한 그는 “상을 받고, 칭찬받는 것. ‘꿈’으로 묶이는 그런 설정들로 저를 움직이고 싶지 않다는 의미다. 예전엔 즐기질 못했다. 항상 자조적이고, 관상적이고, 분석적이어서 매 순간들에 녹아들지 못했다. 과거에는 그럴 여유와 허락이 주어지지 않았던 거 같다. 어린 시절 열등감과 결핍으로 인해 저도 모르게 가져갔던 욕심들을 이젠 내려놓고 편안해지고 싶다”고 덧붙였다.

jayee212@sportsseoul.com

사진 | UA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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