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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이대로면 프로가 사라질 수도 있다.”
지난 2014년 용인 삼성생명 지휘봉을 잡은 임근배 감독은 ‘다그치지 않는 농구’를 화두로 꺼냈다. 고압적으로 지도하지 않아도 프로인 만큼 선수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농구를 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미였다. 폭언, 폭행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지 않은 시점이었는데, 임 감독은 “프로 선수들이고 성인인데 언제까지 지도자가 고함치고 윽박지르면서 훈련하고 경기를 해야 하나. 프로 선수들이 밝고 즐겁게 농구하는 모습을 자꾸 보여야 어린 학부모도 운동을 시키는데 주저함이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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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까 싶었다. 여자프로농구는 아직도 감독, 코치, 심판 등을 ‘선생님’으로 부른다.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경기 중에 지도자가 선수에게 욕설을 하는 풍경도 얼마 전까지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아마추어부터 몸에 밴 습관이라 프로에서도 문제인식이 없었다. 종목 자체도 매우 격렬해 여자 선수들이 기피하는데다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훈련 분위기까지 답습하니 저변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몸싸움이 덜한 배구 등 다른 종목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학부모가 늘었고, 현재 겨울 스포츠의 꽃은 농구가 아닌 여자배구로 옮겨가는 추세다. 임 감독은 이미 6년 전부터 이에 대한 위기감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취임 6년 만에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일군 임 감독은 “내가 가진 철학을 아무리 강요해도, 한국 사회는 ‘너나 잘하세요’한다. 내 팀도 제대로 건사못하는데 무슨 체육개혁을 외치느냐는 핀잔이 따라 붙는건 어쩌면 당연한 얘기다. 이번 우승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나는 힘없는 감독 일뿐이다. 우리팀이 우승했다고 스포츠를 바라보는 인식이 한 번에 바뀔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우리 팀 만큼은 문화를 바꿔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으니, 전통으로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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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임 감독은 코치시절부터도 호랑이였다. 종교적 이유도 있지만 여러 상황이 겹쳐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변하기 시작했고, 감독 부임 이후부터는 ‘선수가 하는 농구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여자농구 저변이 약하다는 얘기는 남자농구팀 코치시절부터 익히 들었지만, 실제로 고교농구를 보러 갔더니 선수 6명으로 대회를 치르는 팀이 있더라. 이건 아니다 싶었다”고 말했다. 일본 전지훈련 때에는 전철 안에서 거의 모든 학생들이 운동용품을 갖고 다니는 모습을 보며 일본의 학원스포츠와 생활스포츠 저변을 들여다보며 또 한 번 큰 영감을 받았다. 임 감독은 “1인 1기를 의무화해야 생활체육 저변이 확대된다. 이런 정책을 만드려면, 우선 스포츠가 재미있다는 것을 학생과 학부모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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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빼어난 기량과 기술을 가진 프로 선수들이 즐겁게 농구하는 모습을 꾸준히 보이고, 이런 팀이 챔피언에 등극하는 것으로 ‘바른길’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따라 하려는 아마추어팀이 생긴다. 아마추어는 프로를 보고 배우기 때문이다. 임 감독은 “지난 6년간 선수 구성도 많이 바뀌었지만, 기본 기조는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실을 봤으니, 현 기조에 디테일을 더해 업그레이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생명은 그 어느 팀보다 경기 중 선수들끼리 대화를 많이 나누는 팀으로 변해 있었다. 자율농구라고 규정할 수는 없지만, 최선참 김보미 김한별부터 젊은피 기수 윤예빈까지 플레이를 즐기고 있다는 인상을 숨기지 않았다.
삼성생명이 쓴 ‘언더독의 반란’ 드라마는 여자프로농구의 팀 문화를 바꾼 첫 번째 성공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임 감독의 철학도 이번 우승으로 울림을 주기 시작했다. 이 선한 영향력이 고사 위기에 처한 여자농구에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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