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분쟁, LG 손 들어준 미ITC
서울 LG와 SK 본사 건물  연합뉴스

[스포츠서울 박현진기자]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분쟁이 ‘운명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양사의 운명을 가를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한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지난달 LG가 SK를 상대로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분쟁의 최종 결정에서 LG 측의 손을 들어주며 SK에 미국내 10년간 배터리 관련 수입금지 명령을 내렸다. 이 조치의 최종 확정 여부는 바이든 대통령의 손에 달려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한은 오는 11일(현지시간)까지다.

◇ 물러설 곳 없는 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월 영업비밀 침해 분쟁에서 최종 패하면서 공사를 진행중인 미국 조지아주 2공장의 공사 속도를 늦춰왔으며 최근 협력업체에 대한 추가 공사 발주도 중단했다. SK 이사회가 “LG의 과도한 요구 조건은 수용할 수 없다”고 회사 입장에 힘을 실어주면서 미국 사업 철수 가능성까지 열어놓은 결과다. 지난달 SK이노베이션의 김종훈 이사회 의장이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을 끌어내기 위해 미국에 다녀왔고 최근 김준 사장도 미국으로 건너가 막판 설득에 ‘올인’하고 있다.

양 측은 ITC 최종 결정문이 공개된 지난달 초 한 차례 협상을 진행했으나 성과없이 끝났고 이후 만남은 없었다. SK측은 이 자리에서 종전보다 높은 1조원을 합의금으로 제시했으나 LG측은 ‘3조원+α’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SK는 3조원 이상을 주면서까지 미국 사업을 영위할 이유가 없다고 보고 있다.

◇ 벼랑 끝 전술은 통할까

전문가들은 SK의 실제 미국 사업 철수 가능성은 전적으로 ‘경제 논리’에 달렸다고 본다. SK는 지난해 완공된 조지아주 배터리 1공장과 현재 공사중인 2공장에 지금까지 약 1조5000억원을 투입했다. SK는 미국 사업 철수가 결정되면 조지아주 공장 건물은 포기하고 배터리 생산 설비만 헝가리 공장으로 이전한다는 계획이다. 생산 설비를 제외한 나머지 투자비는 회수가 불가능한 ‘매몰비용’이다. 여기에 거액의 설비 이설 비용과 조지아주 공장의 고객사인 포드·폭스바겐 배터리 공급 불발에 따른 위약금이 추가로 들어간다.

SK 관계자는 “미국 공장 땅은 조지아주로부터 제공받은 것으로 공장 철수시 반환하면 되고 설비 이전 비용은 최종 컨설팅 결과를 봐야 하지만 1000억원대다. 위약금도 시장에 알려진 만큼 크지는 않아 모든 비용을 더해도 LG가 요구하는 ‘3조원+α’보다는 훨씬 낮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업 철수 결정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SK가 미국 사업을 철수해도 LG가 미국 델라웨어 법원에 제기한 민사소송 결과에 따라 LG에 배상금은 물어야 한다. 게다가 재판에서 지면 수천억원으로 예상되는 LG의 변호사 비용까지 떠안아야 한다. 미국 시장 포기에 따른 기회비용, 완성차 고객사에 대한 신뢰도 저하 등에 따른 무형의 손실도 감수해야 한다.

◇ 바이든의 선택은

업계는 영업비밀 침해와 관련해 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가 없어 ITC 결정이 뒤집힐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SK는 최근 바이든 정부의 미국 중심의 반도체·배터리 등 공급망 재편 움직임과 지난 1일 LG-SK의 ITC 특허 분쟁에서 SK가 LG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예비결정이 내려진 점 등을 들어 거부권 행사에 사활을 걸고 있다.

거부권이 행사되면 SK는 수입금지가 무효화돼 큰 시름을 덜고 LG와 합의를 시도하거나 델라웨어에서 배상금 규모를 다투게 된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 SK는 벼랑 끝으로 몰린다. SK는 일단 시간을 벌기 위해 즉각 미국 연방항소법원에 ITC의 최종 결정에 대해 항소할 전망이다. 항소심 중에는 델라웨어에 제기된 민사재판도 같이 연기돼 SK 입장에서 최소 1년은 벌 수 있다. 그사이에 사업 철수 여부를 결정하거나 LG와의 합의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ji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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