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석 1열
2020 도쿄올림픽 취재진이 지난 18일 일본 도쿄 나리타공항에 도착해 타액 PCR검사를 대기하고 있다. 도쿄 | 김용일기자 kyi0486@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 도쿄=김용일기자] 18일 오후 8시30분.

2020 도쿄하계올림픽 취재차 일본 도쿄에 온 기자가 숙소에 도달한 시각이다. 나리타공항에 도착한 이후 7시간 만이었다. 일본은 비행시간이 2시간 안팎일뿐더러 시차도 같아 피로에 대한 부담이 없는 곳이다. 그러나 이번엔 마치 장시간 비행으로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온 것처럼 숙소에 들어선 순간 먼저 침대에 쓰러졌다. 이유는 앞서 나온 일부 언론 보도처럼 이번 올림픽에 선수단, 관계자, 미디어 모두 전례 없는 ‘입국 전쟁’부터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도쿄올림픽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강행한 대회다. 33개 종목에서 세계 205개 국가 1만5000여 선수가 참여한다. 임·직원과 취재·중계진 등 대회 관계자를 포함하면 7~8만 명이 도쿄를 중심으로 몰려든다. 결국 올림픽 성공은 코로나19로부터 지배당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게 최우선 요건이 됐다. 하지만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다소 무리한 방역 시스템을 꺼내 들었다가 ‘행정 카오스’에 빠진 모양새다. 이는 곧 수만 명이 입국 전쟁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조직위는 빈틈없는 방역을 위한 것이라며 ‘분골쇄신’을 외쳤으나, 제때 입국자 서류를 처리하지 못해 예외규정을 두는 등 원칙과 기준도 무너지고 있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한 취재진이 번호가 적힌 의자에 앉아 대기하고 있다.

나리타공항
취재진에게 여권과 코로나 음성증명서, 오차 애플리케이션 활성화 등을 확인하는 관계자의 모습.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일본 입국 이후 14일의 동선을 보고하는 액티비티 플랜. 요즘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엑셀 파일을 내려받아 입국하는 날짜와 시간, 공항, 항공편은 물론 방문 예정지를 꼼꼼하게 적어 이메일로 보내야 한다. 그리고 각 언론사 대표 CLO(Covid19 Liason Officer)가 통합 페이지인 ICON에 등록한다. 이를 일본 정부가 승인해야 하고, 코로나19 방역 대책 애플리케이션인 오차(OCHA)를 활성화해 방역 심사에 요구되는 QR코드를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또 수많은 문서와 엑셀 파일이 오간다.

문제는 처음엔 조직위 CLO 담당자와 각 언론사 기자의 소통이 원활하게 진행돼 보였으나 갈수록 답변이 느려졌다. 급기야 출국이 임박한 취재진이 승인을 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기자도 일찌감치 관련 서류를 제출했지만 이르게 답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CLO 담당자 2명이 ‘승인이 잘 이뤄지고 있다’와 ‘수정할 내용이 필요하다’는 서로 다른 견해의 메일을 보내 기자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결국 수정한 엑셀 파일을 다시 보냈는데, 조직위에서 늦게 확인해 출국 전날에야 가까스로 일본 정부 승인을 받았다. 이마저도 출국 전날 CLO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빠르게 확인을 요청했고, 일본에 있는 지인을 통해서 재차 요구한 끝에 이뤄졌다. 어렵게 나리타 공항을 밟았지만 입국장을 빠져나가기도 쉽지 않았다. 또다시 여러 장의 서류를 주고 심사를 거쳤으며, 타액을 이용한 PCR(유전자증폭) 검사로 3시간여 대기하기도 했다.

도쿄 관중석1열
타액PCR 검사를 마친 취재진이 공항 내에 마련된 공간에 앉아 하염없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도쿄 | 김용일기자 kyi0486@sportsseoul.com

치밀하고 꼼꼼하기로 소문난 일본이 코로나19 방역에 실패한 주된 이유로 꼽히는 게 ‘지나친 완벽주의’다. 애초 백신 계약도 빠른 편이었으나 복잡한 백신 승인 절차로 변이 바이러스 대응에 실패했다. 두 달 전 ‘마이니치신문’ 등 보도에 따르면 후생노동성은 해외에서 개발한 코로나 백신에도 일본인을 대상으로 임상 시험 결과를 요구했다. 임상 시험 결과를 제출해 허가를 받는 데 화이자는 2개월, 모더나는 2개월 반, 아스트라제네카는 3~4개월 이상 걸렸다. 결국 최근 들어 백신 접종 절차를 간소화해 접종률을 늘리고 있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와 대조되는 일본의 관료주의는 장점이 있지만 코로나19라는 미증유 시대에 다소 무리함이 따른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올림픽 방역 시스템도 궤를 같이한다. 만약 한국에서 이번 올림픽이 열렸다면 문서 위주가 아닌 전산 위주의 시스템으로 복잡하지 않게 진행됐으리라고 본다.

취재진을 더 황당하게 만드는 건 까다로운 입국 절차와 비교해서 도쿄 내부 방역은 허술하다는 점이다. 거리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기본이고, 밤늦게까지 술집에서 유흥을 즐기는 사람도 많다. 재일교포인 본지 칼럼니스트 신무광 피치커뮤니케이션 대표는 “일본 내 긴급사태 선언 이후 식당 등이 오후 8시까지 운영하도록 했으나 ‘권고’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처럼 법적 규제를 하지 않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가뜩이나 올림픽 개막도 하기 전에 선수촌 내 확진자 소식이 들려온다. 이번 올림픽은 안전하고, 건강하게 지내는 게 최우선 과제가 돼 버렸다.

*코로나19 펜데믹 상황에서 강행하는 2020 도쿄올림픽은 전체 경기의 96%가 무관중 경기로 열립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일본 내 코로나19 상황이 호전되면 유관중으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긴급사태가 재가동한 현지 분위기를 보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도쿄 관중석 1열’은 사상 초유의 ‘무관중 올림픽’이지만 마치 관중석의 1열에 앉아 경기를 보는 것처럼 생생한 느낌을 전해드리겠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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