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범 양현종
KIA 나성범(위), 양현종. 제공=KIA 타이거즈

[스포츠서울 | 장강훈기자] 한차례 광풍이 휩쓸고간 프리에이전트(FA) 시장이 끝나가고 있다. 30일 현재 미계약자는 유틸리티 정훈(34) 정도다. 이들을 제외한 14명은 역대 최고액인 971억원을 기록하며 짧게는 2년, 길게는 6년간 선수생활을 이어간다.

올해 FA 계약을 체결한 주요 선수들은 직접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경우가 많았다. KIA와 6년 총액 150억원에 도장을 찍은 나성범은 협상 대리인(에이전트) 없이 처음부터 직접 협상에 임했다. 나성범은 “구단 관계자와 대면해 협상을 해보니 와닿는 게 더 컸다. 아무래도 전해듣는 것과는 확실히 차이가 났다. 구단에서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내 얘기를 어떤 자세로 듣는지 등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게 어려운 점이면서도 소득이었다”고 설명했다.

진통 끝에 KIA 유니폼을 다시 입은 양현종도 계약 성사 단계에는 직접 등판했다. 프랜차이즈스타 출신인 데다 이적을 고려하지 않았던만큼 협상 책임자와 직접 만나 담판을 짓는 게 더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양현종이 직접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에는 계약규모가 공개돼 부정적인 여론이 거셀 때였다. 뉘앙스 차이로 긍정이 부정으로 둔갑할 수도 있어, 민감한 부분은 직접 조율하는 것이 오해를 불식시키는 방법이기는 하다. 양현종으로서는 정면돌파로 추가 잡음을 없앨 필요가 있었다는 관측이다.

장성우
FA 계약 체결 후 이숭용 단장(왼쪽)과 포즈를 취하고 있는 장성우. 제공=KT 위즈

KT 장성우도 에이전트 없이 직접 협상에 임했다. 30억원대로 출발한 몸값이 4년 총액 42억원으로 마무리됐는데, 에이전트를 내세운다고 금액이 더 올라갔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KT 이숭용 단장은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주고 받으면서 장성우가 팀에 필요한 이유를 충분히 설명했다. 선수 본인도 원하는 것들을 조리있게 얘기해 불필요한 소모전 없이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4년 총액 60억원에 도장을 찍은 황재균과 3년 30억원에 계약한 박병호 역시 자신의 거취를 직접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프로야구선수협회가 집계한 공인 선수대리인은 30일 현재 88명이다. 이 가운데 한 명 이상 선수와 계약을 맺은 에이전트는 45명이다. 이들은 205명의 선수와 계약을 맺고 협상을 대신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선수대리인’이 반드시 연봉 협상을 총괄하는 에이전트로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에이전트 독과점 방지를 위해 구단당 세 명, 최대 15명을 넘길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포토]또 다시 포효하는 황재균, 2이닝 연속 1타점 2루타
KT 황재균이 지난달 18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2루타를 친 뒤 기뻐하고 있다.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연봉 재계약 대상자는 에이전트가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없으니 평소에는 매니지먼트 계약으로 전환해 계약을 맺고 있다. 매니지먼트 계약은 인원 제약이 없다. 매니지먼트로 계약을 맺고 용품이나 방송출연 등에 도움을 주다가, FA 권리를 얻으면 협상 기간에만 에이전트 계약을 맺는 묘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사실상 독과점 방지 규정이 사문화된 셈이다. 제도 보완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공론화하지는 않고 있다.

선수들이 직접 협상 테이블에 앉는 모습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구단의 협상 방식도 변화가 예상된다. 광풍이 지나가면 생태계가 변하기 마련이다. 올해가 그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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