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정다워기자] 용서받지 못하는 죄도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열고 징계 중인 축구인 100명에 대한 사면 조치를 의결했다. 협회가 사면 조치를 단행한 것은 지난 2009년 이후 14년 만의 일이다.

사면 대상자는 각종 비위 행위로 징계를 받고 있는 전현직 선수, 지도자, 심판, 단체 임원 등이다. 대상자의 절반 수준에 해당하는 48명은 지난 2011년 프로축구 승부조작으로 제명된 당시 선수들이다.

협회는 “지난해 달성한 월드컵 10회 연속 진출과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을 자축하고, 축구계의 화합과 새 출발을 위해 사면을 건의한 일선 현장의 의견을 반영했다. 오랜 기간 자숙하며 충분히 반성을 했다고 판단되는 축구인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부여하는 취지도 있다”라는 사면 사유를 밝혔다.

협회의 결정을 보는 대중의 시선은 싸늘하다. 무엇보다 승부조작 범죄를 저지를 선수들을 대거 사면한 점에 공분하는 분위기다.

사면은 할 수 있다. 모든 범죄에는 형량이 존재한다. 절도와 살인의 형량이 절대 같지 않다. 사회도 형량을 마친 범죄자의 사회 활동을 막지 않는다. 축구인도 잘못한 일에 해당하는 죗값을 충분히 치렀다면 다시 한 번 기회를 줄 여지가 있다.

문제는 승부조작이 도저히 용서하기 어려운 범죄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형법 41조에서 형벌의 종류에 법정 최고형으로 사형을 포함시키고 있다. 실질적으로 사형을 집행하지는 않지만 흉악범이나 죄질이 극도로 나쁜, 갱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범죄자에게는 사형 선고를 내린다.

승부조작범은 적어도 축구계 내에서는 사형선고를 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질 나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다. 협회는 “비위의 정도가 큰 사람은 사면 대상에서 뺐다”라고 설명했지만 승부조작에서 비위의 정도를 따지는 게 합리적인지는 의문이다. 스포츠의 최대 가치인 공정성을 해치는 범죄의 경중을 어떤 기준으로 가늠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심지어 승부조작 사건의 최대 피해자로 볼 수 있는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는 협회의 사면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맹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한 달 정도 전부터 협회에서 연맹 쪽에 사면 이야기를 꺼낸 것으로 안다. 연맹에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고 들었다. 연맹은 아직 프로축구가 승부조작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라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걱정해 반대했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협회는 연맹의 의견을 묵살한 채 사면을 단행했다. 처음부터 협회는 프로축구 쪽의 목소리를 들을 생각이 없었고, 사실상 ‘답정너’였던 것으로 보인다.

프로축구팀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한 축구단 관계자는 “협회라는 조직에서 승부조작의 무거움을 오히려 더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최근 몇 년 사이에도 승부조작 의심 사건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지 모르겠다. 본인들과 관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정말 무책임하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불과 5년 전인 2018년 이한샘이 승부조작 제의를 받고 연맹에 신고했다. 이한샘에게 승부조작을 제의한 사람도 나름 유명한 프로축구선수였다. 이후에도 승부조작으로 의심되는 사건이 있었다. K리그는 절대 승부조작 안전지대가 아니다.

프로축구계는 여전히 승부조작의 아픔과 충격을 기억하고 있다. 누구보다 큰 상처를 받은 조직이나 팀, 구성원, 그리고 축구팬도 마찬가지다.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협회는 사면 소식을 우루과이전 킥오프 한 시간 전 발표했다. 어떻게든 최대한 묻어가길 바랐다는 의심을 살 만하다. 스스로도 떳떳하지 않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최근 몇 년간 협회는 계속되는 졸속행정으로 인해 축구계는 물론이고 대중의 질타와 외면을 받고 있다. 정몽규 협회 회장은 외교 참사로 인해 망신을 당했고, 최근 A대표팀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도 매끄럽지 않아 신뢰를 상실했다. 이제 승부조작범 사면이라는 희대의 ‘헛발’까지 나왔다. 협회가 어디까지 추락할지 가늠도 안 된다.

weo@sportsseoul.com

기사추천